이유빈(내분비-대사내과 의사)
흔히 당뇨병은 성인병, 어른들만의 병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간혹 비만하지도 않은 소아청소년들이 당뇨병이라는 진단 하에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는 경우를 접하게 됩니다. 왜 이 아이들은 이렇게 어린 나이에 당뇨병에 걸리게 된 것일까요? 이들의 당뇨병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당뇨병 중에는 인슐린 저항성, 즉 인슐린에 대한 신체의 반응이 정상보다 감소해 있음에 기인하는 당뇨병이 가장 흔하지만, 몸에서 생성되는 인슐린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발생하는 1형 당뇨병도 있습니다. 1형 당뇨병 환자에서는 유전적, 환경적, 면역학적인 요인에 의해 궁극적으로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베타세포가 파괴되며, 그 결과 몸에서 인슐린을 충분히 분비하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들 환자들은 필요한 인슐린을 외부에서 투여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1형 당뇨병은 어떤 연령층에서도 발병할 수 있지만, 20세 이전에 발생하는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1형 당뇨병에 대한 유전적인 소인을 가진 사람들은 출생 시에는 정상적인 베타세포 용적을 가지고 있지만, 면역세포가 스스로 자기 몸의 조직을 공격하여 파괴하게 되는 자가면역 기전에 의해 2차적으로 베타세포의 수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자가면역 기전은 바이러스 감염이나 환경적인 자극에 의해 촉발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상당수의 환자들에서는 이러한 촉발이 일어난 이후 이미 당뇨병으로 진행하기 이전부터 자가면역에 의한 베타세포의 파괴를 시사하는 면역학적인 지표가 검출되게 됩니다. 이러한 자가면역학적인 파괴가 진행되면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 용적은 점차 줄어들게 되고 그에 따라 인슐린 분비도 점차 감소하게 됩니다. 그러나 베타세포 파괴가 상당히 진행할 때까지는 혈당은 정상 범위를 유지하게 되며, 전체 베타세포의 70-80% 이상이 파괴되고 나서야 당뇨병의 임상적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베타세포 파괴가 일어나는 속도는 개인 별로 차이가 매우 커서 일부 환자들은 단기간에 급격히 당뇨병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일부 환자들은 서서히 진행하는 경과를 보이기도 합니다. 대다수의 베타세포가 파괴된 상황에서는 일부 기능할 수 있는 베타세포는 남아있을지언정 혈당을 정상 수준으로 유지시킬 만큼 충분히 인슐린을 분비하지 못하게 되며 그로 인해 식사 후 혈당 상승을 막고 일정 수준의 혈당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감소하다가 결국 당뇨병으로 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감염이나 사춘기 시기 등과 맞물려 체내에서 인슐린 요구량이 증가함으로써 당뇨병 발현 과정이 더욱 촉발될 수도 있습니다. 일부 1형 당뇨병 환자들에서는 당뇨병의 임상 증상이 나타난 후 다시 적은 양의 인슐린만으로도 당뇨가 비교적 잘 조절되거나 혹은 잠시 인슐린 사용 없이도 비교적 별문제 없이 잘 지내는 시기가 1-2년 이내로 관찰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기를 밀월기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나마 남아있던 베타세포에서 인슐린 생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나 이러한 시기는 첫 1-2년 이후 소실되게 되며 곧 절대적인 인슐린 결핍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일란성 쌍둥이에서 한 명이 1형 당뇨병이 있을 경우 다른 한 명도 1형 당뇨병이 있을 확률은 40-60%에 이릅니다. 이는 1형 당뇨의 발병을 결정하는 데 있어 유전적인 영향이 상당히 작용하지만, 유전적인 인자만으로 1형 당뇨병의 발병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그동안 면역기능에 관련된 몇몇 유전자를 포함하여 1형 당뇨병의 발병 위험도를 높이는 유전자, 혹은 반대로 발병 위험도를 오히려 감소시키는 유전자의 변화가 보고되기는 했지만, 발병 위험을 높이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에서는 1형 당뇨병이 발생하지 않으며, 그중 실제로 1형 당뇨병이 발생하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합니다. 1형 당뇨병 환자의 가까운 친척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1형 당뇨병의 발생 위험이 증가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전반적인 발생률은 높지 않습니다.
1형 당뇨병의 발생과 관련된 환경 인자에 대해 그동안 여러 가지 요인들이 제시되었지만, 아직까지 명확하게 확립된 요인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1형 당뇨병과 관련한 환경적인 촉발 인자를 밝혀내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은, 이러한 환경적 촉발 요인이 실제 1형 당뇨병이 발병하기 훨씬 오래전에 이미 선행하였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이런 경우에는 1형 당뇨병 환자의 발병 전 몇 년 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자들만을 검토한다고 하더라도 충분치 않을 수 있습니다. 일부 추정 가능한 환경적인 인자로는 바이러스 감염 등과의 관련성이 제시되고 있으며, 장내 미생물 등 미생물과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사람을 대상으로 1형 당뇨병의 발병 고위험군에서 1형 당뇨병의 발생을 예방한다고 확인된 효과적인 방법은 없으며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