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췌도 이식에 대한 올바른 시각

진상만(내분비-대사내과 의사)

최근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종 췌도 이식 후 1개월 이상 인슐린의 사용 없이 목표 혈당을 유지한 사례가 언론에 발표되면서, ‘당뇨병의 완치 시대가 열렸나’라는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췌도 이식의 발전이 당뇨병의 완치 시대가 열린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심한 혈당 변동성을 보이는 제1형 당뇨병의 치료를 주된 관심사로 하는 당뇨병 전문가들이 췌도 이식을 보는 시각은 대중들의 시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췌도 이식의 현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췌도 이식의 대상 환자군인 저혈당 무감지증을 가진 제1형 당뇨병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혈당 무감지증이란?

저혈당 무감지증(impaired awareness of hypoglycemia)이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저혈당에 의해 자율신경계의 반응이 둔화되어 혈당이 저혈당의 기준(일반적으로 <70mg/dL) 이하로 낮아져도 그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저혈당이 와도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여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상태로 보아야 합니다.

외국 연구 결과를 보면 저혈당 무감지증은 제1형 당뇨병의 20-40%에서 나타나며, 이 중 66%의 환자에서 연간 2회 이상 생명을 위협하는 심한 저혈당이 나타납니다. 또한 제1형 당뇨병 환자의 4-10%는 심한 저혈당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비슷한 비율을 국내에 적용할 경우 적어도 수 천명의 제1형 당뇨병 환자가 저혈당 무감지증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당뇨병을 처음 진단 받은 제2형 당뇨병 환자와 같이 비록 당뇨병은 있지만 자신의 인슐린 분비능이 어느 정도 보존된 경우, 저혈당은 그리 흔히 일어나지 않고, 생명이 위험한 심한 저혈당이 나타날 확률도 적습니다. 그러나 제1형 당뇨병과 같이 자신의 인슐린 분비능이 남아 있지 않은 환자에서는 저혈당이 예측할 수 없게 나타나며, 생명을 위협하는 심한 저혈당이 나타날 확률도 높아집니다. 그 동안의 외국 연구들에서, 췌장 이식과 췌도 이식을 받은 후 5년 이상 인슐린 없이 목표 혈당 유지가 가능한 환자의 비율은 각각 약 70%와 25-50%로 아직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췌도 이식 후 5년 이상 의미 있는 인슐린 분비를 유지하는(공복 C-peptide >0.3 ng/ml) 환자의 비율은 췌장 이식과 동일한 약 70%였으며, 췌장 이식과 췌도 이식은 심한 저혈당으로부터의 자유를 주는 목적으로는 동등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췌도 이식을 ‘당뇨병의 완치’로 인식하는 관점에서는 아직 현재의 췌도 이식의 성적이 실망스러울 지라도, 심한 저혈당에 자주 노출되는 제1형 환자를 많은 노력을 들여 교육하고, 고가의 연속 혈당 측정과 인슐린 펌프를 사용하여 치료를 시도해 왔던 의사의 관점에서는 가장 앞선 기술을 사용한 치료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저혈당 무감지증을 동반한 환자를 개복 수술의 위험 부담 없이도 심한 저혈당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는 중요한 치료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국내의 췌도 이식

국내에서는 1999년 말 삼성서울병원에서 아시아 최초로 동종 췌도 이식을 시행하였습니다.
2회의 췌도 이식 후 혈당의 변동성이 호전되었고 빈번하게 나타났던 심한 저혈당이 발생하지 않게 되었으며, 신경병증에 의한 통증이 극적으로 호전되었습니다. 또한 2013년 서울 성모병원에서 한 명의 뇌사자만으로부터 얻은 췌도를 이식하여 저혈당 무감지증을 교정한 사례를 보고했고, 같은 병원에서 2015년 1명의 뇌사자로부터 분리된 췌도로 동종 췌도 이식 후 인슐린을 중지한 상태에서도 1개월 이상 목표 혈당을 유지한 사례를 언론에 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내 연구진들의 적지 않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췌장/췌도 이식은 서구의 선진국들에 비해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 해왔으며, 이는 제1형 당뇨병의 낮은 유병률과 부족한 사회의 인지도, 저혈당 무감지증에 대한 체계적인 치료를 어렵게 하는 왜곡된 의료 체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생각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연속 혈당 측정, 인슐린 펌프에 대한 보험 적용이 전무한 실정이고, 몸에 센서를 부착하여 규칙적으로 혈당을 측정하고, 혈당이 높은 경우 자동적으로 인슐린을 주입하는 기기(sensor-augmented insulin pump) 등 기술 기반 치료의 영역에서도 국내 기술 및 관련 교육 수준이 서구에 비해 훨씬 뒤처진 것을 생각하면, 국내에서 최소한 수 천명이 존재할 것으로 보이는 저혈당무감지증 환자의 치료를 위해 췌장/췌도 이식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서구의 국가에서보다도 높은 중요성을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