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최고의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말기암 환자의 희망만을 생각한다. 폐암치료의 최고 권위자
등록일 2014.05.07 조회수 5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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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과 두경부암 분야에서 새로운 치료법과 조기진단법을 개발한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근칠 교수는
폐암 치료 분야에서 명실공히 국내 대표 명의다. 
또 수 십 년간 의사로서 많은 환자를 돌본 것은 물론 세계폐암학회에서 상임이사(Board of Directors), 폐암센터장,
한국임상암학회 이사장 등으로 열정적인 활동을 통해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선배 의료인으로도 손꼽힌다. 



이렇듯 화려한 경력의 박 교수는 온몸으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입증하는 듯 겸손했다. 끝없이 자신을 스스로 낮추며 그저 병과 환자만을 생각하는 의사 중 의사였다. 쉼없는 연구로 항암치료의 부작용을 낮추고 환자마다 맞춤형 치료로 희망을 전하는 혈액종양내과 박근칠 교수를 만났다.
 

나에게 건네는 한 마디, "환자들에게 배우자"
삶과 죽음에 단련되어 있는 나의 소원은 '오래살자'가 아닌 '아프지 말자'

“어휴! 저는 명의 아닙니다. 저 보다 훌륭한 명의가 훨씬 많습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분명히 명의로 알려졌고 실제 그 능력을 인정받았음에도 박근칠 교수는 ‘명의를 뵙게 되어 영광’이라는 필자의 말에
연방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언론과 인터넷, 의사 동료와 환자들의 증언 등 다양한 기록이 그를 명의로 입증하고 있다.





이렇게 명의 반열에 오른 그의 장래희망이 처음부터 의사는 아니었다. 
자연과학 부문에 흥미를 느꼈고 물리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머리로는 대학 졸업 후 천재적인 물리학자까진
될 수 없을 것 같아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과학 분야에서 의과대학을 결정, 박 교수의 빌려 쓰자면
‘소극적 선택’을 했다.

“의사의 삶에 만족한다기보다는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의사가 역시 환자에게 도움이 되니까요. 저야 말기암환자를 다루다 보니 외과 선생님들처럼 폼나게 완치되는 환자는 없지만 그래도 환자들의 남은 시간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대안적 치료를 하면서 고맙다 하는 분들이 계셔서 보람을 느낍니다.” 

폐암 환자 대부분이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몇 년을 산다. 외과의사처럼 수술 후 완치되는 경우도 적다. 그 어려운 투병 생활을 잘 참고 견디는 사람도 있지만 어린아이처럼 쉽게 좌절하고 힘들어 하는 환자도 있다. 어쨌든 이 같은 폐암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박 교수와 죽음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그래서인지 삶과 죽음에 대한 남다른 생각이 돋보인다.

“오늘도 그런 환자였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어요. 가족을 다 물리치고 잠깐 이야기 하자더니 자신이 더 살기 어려울 것 같아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 정도로 삶과 죽음에 초연하고 담담한 분도 계세요.”
 
박 교수는 생과 사의 경계선에 있는 환자들을 마주하며 스스로 단련하고 자신도 초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환자를 또다시 대할 때마다 ‘나는 저럴 수 있을까’라며 자문한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죽음에 초연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32년 전 첫 인턴 시절 하루걸러 한 명씩 환자가 죽어나가는데 이건 뭐 내가 의사인지 장의사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으니 시키는 대로 몸으로 때우고 고꾸라져 잠들고 그랬죠.”
 
의사인지 장의사인지 모를 정도로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아온 박 교수는 죽음에 초연해지는 비결로 좋게 말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기단련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무감각해지는 것으로 정리했다.
 
많은 이들이 신을 향해 구하고 기도하는 것 중 첫번째 소원이 대부분 장수다. 하지만 평생 삶과 죽음에 단련돼온 박 교수는 조금 다른 소원을 빈다. ‘아프지 말자’가 그것이다.

“나는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을 믿어요. 그래서 오래 살자가 아니라 아프지 않은 것이 소원이에요.”

박 교수 자신의 이 같은 소원을 위해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오래 살기 위함이 아닌 아프지 않기 위함이다. 그리고 자신의 소원과 생활을 환자들에게 오롯이 적용하고 강조한다.

 

환자들에게 건네는 한 마디, "인체는 자연 그대로가 제일 좋아!"
폐암은 사형선고가 아닌 평생 관리해야하는 만성 질환

박 교수가 폐암을 비롯한 암 예방을 위한 강조하는 첫 번째 관리법은 식습관 관리다.
전체 암의 발병원인을 주요 카테고리로 나누면 그 중 3분의 2가 음식 식습관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담배와 술을
구체적인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이와 함께 규칙적인 운동과 바른 수면 등 생활 습관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이런 것을
조금만 절제하고 조절한다면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암 예방을 위해 강조하는 것은 자연 그대로의 삶이다.
 
“제가 종교는 없지만 이 오묘하고 범접할 수 없는 신체를 보면서 이걸 만든 조물주든 대자연의 섭리든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의사로서 인체의 신비를 느끼면서 내가 이걸 어떻게 다 알고 고치며,  
그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고 대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체라는 것은 결국 자연 그대로가
제일 좋은 겁니다.”

이에 박 교수는 의사임에도 가능하면 약이든 주사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예로 사랑니를 무조건 아프다고 바로 뽑는 것보다는 좀 가라앉은 후 뽑던지 치료하려고 기다리는 의사가 더 좋은 의사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박 교수는 환자들한테도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병원은 안 오는 게 좋고, 제 얼굴은 안 볼수록 좋은 거라고 말이다. 자연 그대로의 삶을 권장하는 것이다.
 
“감기는 2~3일 쉬면 괜찮아집니다. 감기몸살로 병원을 찾아왔을 때 의사가 집에 가서 쉬고 물 많이 드시라고 처방하면 환자들은 화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가장 최적화된 솔루션이라고 판단하여 의학적 상담을 하는 것인데, 그리고 그 자연적인 치유가 가장 그 환자를 위해 좋은 것인데 말입니다.”

그는 보약을 먹고 비싼 운동기구로 운동하고 좋은 곳으로만 여행 다닌다고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인위적으로 즐기는 것이 많아지면 그 편안함과 즐거움에 빠져 신진대사가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저는 회진하면서도 1~3층은 걸어가요. 대중교통으로 다니면서 셔틀버스를 기다릴까? 택시를 탈까 차를 끌고 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또 걸어요.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 평소에 내 몸을 적당하게 움직이는 것이 가장 좋아요.”

자신의 전공 분야인 폐암에 대해서는 환자의 인식전환을 주요 치료법으로 꼽았다. 국내 폐암 발생빈도는 암 중 3~4위
수준으로 사망률은 1위다.

그만큼 폐암에 걸린다면 불치병으로 여기고 치료보다는 포기와 좌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폐암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암의 종류 특성상 조기발견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폐암 1~2기에 발견되는 환자는 전체 폐암 환자의 30%에도 못 미치며, 이 중 70~80%는 수술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폐암을 만성질환으로 보는 환자의 인식전환을 주장하는 것이다.
 
“폐암은 사형선고가 아니라 평생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라고 이해해야 해요.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병이 말을 잘 들을 때에는 모른 척 지내고 악화하면 독하게 치료하는 것을 반복하는 거죠. 만성질환처럼 말에요.”

 

후배들에게 건네는 한 마디, "똑똑한 의사보다는 좋은 의사가 되자"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에게 의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확히 아는 것.


 
박 교수가 의사로서의 길을 먼저 걸었던 사람으로서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하는 첫 가르침의 핵심은
‘의사로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찾아서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젊은 나이에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한계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환자들에게 더 잘 보살필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을수록 혈기왕성해서 이 환자에게 무엇인가를 해줘야 할 것 같고 경과를 관찰하는 기간에는 마치 환자를 놔두고
지켜보는 것을 무책임하게 방기한다고 생각해요. 환자가 숨이 차는 것 같으면 산소를 주고 감기 걸려 떨린다면 해열제를
줘버렸다가 잘못 돼버리는 수가 있단 말에요. 그렇게 때문에 이 환자에게 이것이 꼭 필요한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가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또 한가지는 겸손이다.
남들보다 긴 시간 공부하고 그만두고 싶을 정도의 힘든 시간을 거쳐 의사가 되면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의사가 되어서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날로 의료기술은 발전하고, 자고 일어나면 어제 배우고 익힌 지식이 이미 지난 것이 되어
버리는 이 시대에 자신을 과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 더 안다고 폼잡지 말고 또 모른다고 기죽지 말아야죠. 똑똑하고 우수한 의사가 되고 싶겠지만 오늘 모르면
내일 공부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말이죠. 진짜 좋은 의사가 되는 거에요.”

박 교수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는 어떤 것일까. 그저 실력 있는 의사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좋은 의사를
설명하기에 앞서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한 사연을 들려줬다.

“출근길에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명사 초청 대담 프로그램이었어요. 한 재활보육원의 원장을 모셔서 그분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죠.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보육원생을 잘 가르치고 관리하기 위해서 박사, 의사, 교사, 장관 등 수많은 명사를
초청해서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대요. 그들이 다녀간 후 원생들을 모두 모아놓고 원장이 물었대요. 그 많은 분 중
누구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지 말에요. 그런데 그 답이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는 거에요. 정답이 글쎄 동네 할머니였대요.
좋은 의사는 말이죠, 그 할머니 같은 분이에요.!”

아이들은 백발머리에 숭숭 빠진 이, 굽은 허리 등 초라한 행색의 할머니를 원했다고 했다. 그 이유는 할머니가 연단에 서서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달리 자신들의 손을 잡고 둘러앉아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는 자신의 손자가 넘어져 코가
깨지는 등 보잘것없는 내용이었지만 원생들에게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이며 맞잡은 손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꼈기 때문인 것이다.


박 교수는 이 같은 원생과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좋은 의사는 그렇게 환자와 대화하고 손잡아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따뜻한 온기를 전달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말이다.



“의사로서 가져야 할 지식은 책에도 있고 인터넷에 다 나옵니다. 의학적 지식에 매달리고 연연해도 3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환자를 더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의사가 모르는 것은 똑같지만 환자에게 해를 덜 끼치려고 노력해야 하죠. 그러니 똑똑한 의사보다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가장 낮은 자세로 의사로서, 선배로서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박근칠 교수와의 인터뷰는 경험으로부터 진하게 우러나오는 연륜과, 삶의 지혜가 근간이 되어 있어,
마치 인생의 멘토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분명한 목적의식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진심을 그득히 느끼기에는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 시간도 차고 넘쳤다.

그가 왜 폐암 치료 분야의 명의로 꼽히는데 주저함이 없는지 명확해졌다.

오늘 처음 본 이에게도 이러한 묵직한 울림을 전달해주는 박근칠 교수.

그런 그를 만나는 환자들에게는 분명 치료 그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든든한 인생의 선배이자, 동반자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흔들림없이 함께 잡아주고 이겨내 줄 박근칠 교수가 곁에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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