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환자와 함께 뇌종양이라는 암벽을 등반해나가는 뇌종양 집중치료 신경외과 전문의
등록일 2014.05.07 조회수 4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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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콧(Tony Scott) 감독을 아는가? 형인 리들리 스콧 감독과 함께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명성을 날린 감독이다.
형인 리들리 스콧 감독이 예술성에 무게중심을 둔 작품을 많이 내 놓았다면(블레이드 러너 같은 작품),
동생인 토니 스콧은 철저한 상업주의 정신에 입각한 작품들을 많이 찍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탑건>, <맨 온 파이어>, <크림슨 타이드>, <폭풍의 질주> 같은 작품으로 기억 될 감독이다.
이 외에서 수십편의 영화를 연출하고, 제작했다. 이런 그가 올해 여름(2012년 8월 19일) 자살을 했다.
세계적인 영화 감독으로 부와 명성을 얻은 그가 왜 자살을 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고, 자신의 삶을 비관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팬으로써 그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그가 죽기 전 손에 쥐고 있었던 프로젝트가 바로 <탑건 2>였다. 정말 기대했던 작품인데...

도대체 뇌종양이란 게 그렇게 무서운 병인가?(무섭긴 하다!)
요즘은 뇌종양 수술을 받고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그는 자살을 했던 걸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신경외과 설호준 교수를 찾아갔다. 뇌종양 스페셜리스트 설호준 교수!
그에게 내 의문을 토해내기로 했다.

두렵다. 두려워서 잠이 안 올 정도다. 그렇지만 새롭다. 뇌는 경이롭다.

사람은 그 직업을 통해서 인생을 살아가고,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가?
자기 인생의 기준이 되는 그 ‘업’을 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프라이드죠. 자기만의 전문기술, 그러니까 수술능력이죠. 자기 손으로 사람의 생명. 그것도 가장 다루기 힘든 장기 중 하나인 두뇌를 상대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죠.(웃음) 손으로 하는 전문기술 중에서는 최고가 아닐까란 생각을 합니다.
남들은 3D 업종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 합니다.”

신경외과 중에서도 특히나 뇌종양 쪽에 더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뭘까?
하긴 신경외과라면 뇌종양은 기본적으로 접하는 질병이 아닌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게 아닐까?

“(웃음) 여러 이유가 있겠죠? 뇌라는 정말 중요한 장기를 다룬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자부심이지만,
그 중에서 뇌종양이라는 질병이 가지는 대표성 같은 것도 있죠.
신경외과 뇌관련 질환 중에서 제일 먼저 언급되는 게 뇌종양이잖아요?
그렇기에 더더욱 극복하고 싶다는 욕구도 생기고...”



하긴, 신경외과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질병하면 뇌종양이 아닌가?
아직까지 질병의 발생 원인조차 제대로 정의되지 않아서 그 예방법도 나와 있지 않은 게 뇌종양이다.
미지의 병이다. 두렵지 않을까?
 
“두렵죠. 두렵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다? 두려운 건 뒤에 물어보기로 하고, 새롭다는 의미를 추궁해 보기로 했다.

“뇌의 가소성(可塑性)은 저희들이 봐도 놀라워요. 재활의학과 선생님들의 힘이죠.
그분들에게 고마워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죠.”
 
뇌의 가소성(可塑性)...간단히 말해서 뇌졸중에 걸렸다 치자. 때문에 언어중추가 손상되었다면,
이 사람은 영원히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재활을 통해서 말을 하게 된다. 왜 그런걸까?

뇌기능은 외부환경이나 경험에 의해 스스로 뇌의 담당부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가소성이다. 뇌의 신비인 것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은 어떨까? 신경외과 의사들이 가지는 예의 그 ‘두려움’일까?

“두렵죠. 10년 이상 신경외과에서 있었는데도 두려워요. 두려워서 잠이 안 올 정도입니다.”
 
뇌라는 미지의 영역, 한 발 잘못 디디면 그걸로 천길 칼산에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로서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아요. 종양이 퍼진 곳이 하필이면, 인지나 기억을 담당하는 곳이라면 정말 피가 바짝바짝 마르죠.”
 
그래도 뇌종양의 경우 수술을 통해서 많은 부분 극복이 된 상황이 아닌가?
이제까지의 수술 케이스만 봐도 성공률이 많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는데,

“양성인 경우에는 많이 좋아졌죠. 양성인 경우는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거의 없구요. 1천명의 환자가 있다면,
2~3명 정도? 예전엔 10~20% 정도 사망환자가 발생했는데,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어요. 삶의 질과 후유증 사이에서
고민을 하면 했지. 사망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러나 악성인 경우에는 각오를 해야죠. 영화 <편지> 보셨어요?
주인공이 악성 뇌종양이었잖아요. 처음에는 좋아지는 것 같았지만, 곧 재발을 하죠.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그 생명을 다하죠.”  
 

악성뇌종양이라고 겁먹는 환자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기억난다. 박신양이 열연했던 <편지> 생각해 보니 당시 ‘뇌종양인데, 수술하면 다 고쳐진 거 아냐?’
라고 순진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악성뇌종양 같은 경우에는 예전에는 1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말했죠. 그런데 요즘 같은 경우에는 그 시간이 늘었어요.
예전보다 평균적으로 5~6개월은 더 늘었거든요. 그러나 이것도 평균적인 개념입니다.

언제 발견하느냐, 어떤 치료를 받느냐, 환자의 몸 상태는 어떤가? 여러 변수가 있습니다.
이 변수에 따라 악성이더라도 치료를 받고, 삶의 의지를 가지고 버텨내는 환자분들도 많습니다.

그에 발맞춰 의학기술도 점점 발전하고 있구요. 악성 뇌종양이라고 지레 포기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죠? 당장 내일 신약이 개발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도 신약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희망을 버려선 안 됩니다.

보통 이런 경우 산으로 간다는...요양을 하겠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럴 때마다 이야기를 계속 나눠요.
물론, 지치고 힘든 심정 이해합니다. 동정이요? 그런 건 없습니다. 객관적인 팩트를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환자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계획을 짭니다.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환자의 마음은 정리단계로 넘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고개 끄덕이며) 맞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옵션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이잖습니까?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고, 남아있는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겠다는 선택도 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병과 싸우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만약 싸우겠다고 덤벼들면, 다른 옵션들도 계속 추가가 되는 겁니다.

신약이나 새로운 기술이 지금도 계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해봐야 하죠.
저는 포기할 수가 없어요. 이런 노력들 덕분에 평균생존률이 올라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무턱대고 치료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객관적인 환자 상태를 보고, 치료 계획을 짭니다.
그리고 수많은 변수들을 고민하죠. 이 모든 걸 종합한 다음에 환자와 보호자분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겁니다.”

보호자라...보호자와의 관계도 상당히 민감할 거 같다. 뇌수술, 그것도 뇌종양과 같은 수술에서는
환자가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가끔 발생하지 않는가? 보호자와의 관계가 상당히 미묘할 거 같다.

“저는 수술 전에 환자나 보호자분들에게 예상되는 모든 걸 다 이야기 합니다. 이건 법적인 차원의 문제를 떠나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궁금할 수밖에 없죠. 저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수술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스스로 환기시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뇌를 여는 겁니다.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이런 선택 앞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번뇌가 있겠습니까? 저는 모든 예상 시나리오를 단계별로 다 이야기 합니다. 설명을 할 때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 위주로만 말해드립니다. 그리고 이해하실 때까지 끝까지 설명을 하죠. 완전히 납득해야지만, 이후의 수술과 회복에 있어서 의사와 의료진을 믿고 기다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환자가 깨어나지 않는 경우는...”

그렇다. 깨어나지 않는 경우! 뇌수술을 받고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지만, 의식장애가 장기화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전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원인미상의 괴질 같은 건 없습니다. 예측 할 수 있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어느 정도 범위가 좁혀지죠.
가장 중요한 건 수술 전에 여러 가능성을 다 확인하고, 각각의 가능성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수술을 잘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구요. 미리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을 드렸던 부분이죠.이러이러한 변수가 있다. 이런 경우 의식회복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구요. 워낙 예민한 장기이고, 중요한 장기이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돌발변수가 나와요. 환자의 상태나, 병의 진행상황, 침습정도 등등 저희 같은 경우는 수술 전부터 환자와 함께 고민을 합니다.

어떨 때는 환자를 설득하기도 하죠. 이건 너무 위험하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그런데도 각오를 하고 수술을 말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럴 때는 정말...피가 바짝바짝 마르죠.”



환자들이 수술을 원하는 경우?

“고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것이냐, 아니면 생명을 걸고 몸의 기능유지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것이냐란 선택이죠. 의사라면, 당연히 환자의 생명을 우선시 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질이란 측면도 무시할 수 없거든요. 생명은 건졌는데, 기능장애를 얻는다거나 깨어나지 못한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난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올 1월 달인가요? 30살 여성분이 병원에 오셨어요. 신혼이었는데, 임신 9개월이었죠. 어린시절에 눈을 다쳐서 왼쪽 눈이 실명된 상태였거든요. 문제는 이 분이 머리에 종양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임신 중에는 종양의 성장속도도 빨라지거든요. 나중에 가서는 6cm까지 자랐어요. 이 종양이 시신경을 압박해서 남은 한쪽 눈도 위험하게 됐습니다.
결국 수술을 결정하고,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고, 2주 있다가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되는 겁니다. 제 생각은 간단했습니다. 우선 살아야 한다라는 겁니다. 눈은 어쩔 수 없지만, 우선 사람이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거죠.
이 분이 그러시더라군요. 만약 살아남는다면? 아이는 어떻게 하냐구요. 평생 아이도 못 보고 살 텐데,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자신은 어떻게 살라는 거냐고...아이를 위해서도 눈은 포기 못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난감했죠.
고민을 하다가 그 분 결정을 따랐습니다.”
 
어떻게 됐나요?
 
“기억이 안 날 정도예요. 정신없었습니다. 10시간? 10시간도 더 걸렸을 겁니다. 위험한 부위에 있는 종양을 다 제거했죠.
생명도 살리고, 눈도 살렸죠.(웃음) 지금은 아이와 남편과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해피엔딩이다. 해피엔딩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 그것도 신경외과 의사라는 직업은
언제나 해피엔딩만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신혼부부에게 설호준 교수는 인생을 빚 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설호준 교수는 자신의 선택이 최선인지에 대해 수천, 수만번의 고민을 하고 수술장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이런 고민들 안고 사는 것이다. 그에게 지금 가장 원하는 게 뭔지를 물어봤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의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많은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저도 연구에 참여중이구요. 환자분들과 가족 분들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게
첫째, 자신의 병을 아셔야 합니다. 자신의 병이 어떤 병이고,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고, 어떻게 해야지만 치료될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많은 부분 제가 설명을 드려도 이해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정확한 자기 병명도 모르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자기가 자기 몸을 알아야지만, 치료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걸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포기하지 마십시오. 10년 정도 지나면, 뇌종양의 경우는 맞춤형 치료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의 만성질환처럼 인식 될 수도 있습니다. 이건 너무 낙천적으로 말한 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런 희망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저도 그렇고, 지금 의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분명 길이 있을 겁니다...이런 마음을 많은 환자분들이 가졌으면 하는 게 소망입니다.(웃음)”

그의 말을 들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 인생의 행로에 있어서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거 같은 벽이 등장하면, 나는 그 벽을 넘을 생각보다는 돌아갈 생각, 포기할 생각을 먼저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설호준 교수는 매일 그 벽과 싸워 나가는 것이다. 혼자 벽을 넘는 것도 모자라 벽을 넘기를 포기한 환자들도 설득하고 응원하면서 같이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등정이 언제 끝날 진 모르겠지만, 그 등정이 성공할 것이란 사실만은 확신한다.

그의 등반성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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