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간암환자들의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의사
등록일 2014.05.07 조회수 4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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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양택조씨가 있다. 영화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했던 분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다. 건강상의 이유였는데, 바로 간경화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려할 정도로 건강상태는 악화됐고, 남은 방법은 간이식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적합한 간은 나타나지 않았고, 양택조씨는 간이식을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 순간 그의 아들이 나섰다.

“제 간은 튼튼해요. 건강도 걱정 없구요.”

결국 그는 아들의 간을 받았고(의사가 아들의 간이 크다고 안심을 시켰다), 새 삶을 얻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이다. 그럼 이 기적을 일상처럼 경험하는 이들에게 간이식은 어떤 의미일까?

이식이란? 삶을 창조하는 것이죠!

가볍게 물어봤다. 이식외과 의사에게 이식이란 어떤 의미일까?

“삶을 창조하는 거죠.”

시적인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자부심 과잉이라고 해야 할까? 방금 전까지 피곤에 지쳐있던 눈동자가 빛났다.

“이식환자들 중에서는 생일을 바꾼 환자들이 많아요.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것이죠. 삶을 창조한다는 말의 본의(本意) 그대롭니다.(웃음) 환자들 스스로가 새 삶을 얻었다고 느껴서 생일을 바꿀 정도이니, 이식수술이란 삶을 창조하는 과정이죠.”

그럼 이식외과 의사들은 삶을 창조하는 의사가 되는 것일까? 궁금했다. 왜 하필 이식외과를 선택하게 됐는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터뷰 시간을 빼기 위해서 이리저리 스케줄을 조정하고, 부족한 잠과 인터뷰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삶의 고단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긍정적이잖아요.”

긍...정적? 씩~ 회심의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에 절로 몸이 달아올랐다. “대부분의 질병들을 보면, 뭘 잘라 내거나 병소를 치료하고, 없애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암만 보더라도 암세포를 절제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식의 경우는 삶을 위해 뭔가를 더하잖아요. 장기를 이식해 새로운 삶을 만든다는 거. 희망적이지 않습니까? 처음 간 이식수술을 볼 때는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간암, 간경화, 간경변 같은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간 이식 수술을 받으면...정상생활을 해요. 건강을 바로 회복하죠. 기적과 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데, 몸이 들썩거리죠.”

이식수술을 한다고 해서 다 좋아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간이식은 경과가 무척 좋아요. 생존률도 높구요. 이식 후의 부작용도 거의 없어요. 면역억제제도 거의 안 써도 될 정도죠. 이식을 하고 나면, 장기에 피가 돌면서 색깔이 달라지고, 수술이 끝나면 환자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죠. 후유증도 없구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의사로서의 보람을 느껴요.”

수술, 진료, 연구하느라 3년동안 집에 들어 간 기간이 2달 정도?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환자를 보면 이 일정을 견딜 힘이 생겨.

피곤해 보인다. 환자들에게는 정말 좋은 의사겠지만, 가족들에게는 나쁜 남편, 나쁜 아빠일 것 같았다.

“(웃음) 이혼 안 당한 게 감사할 정도죠. 지난 3년 동안 2달 정도?”
2달 동안 외박을 했단 소릴까? 2달 동안 집에 안 들어갔단 소릴까?

“집에 들어간 게 한 2달 됐을 거예요.” 어...이건 뭐지? 이식외과의 업무강도가 그 정도인 걸까? “(웃음) 수술 스케줄이 빡빡하기도 하고, 병원일정도 있고...연구도 해야 하죠. 그리고 원래 이식외과가 밤낮이 없어요. 갑자기 뇌사자가 발생해 장기이식을 할 일이 발생하니까요.”

이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공여자의 건강, 이종장기이식 연구로 환자들에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이식수술이란 건...그것도 대한민국의 이식수술이란 건 뇌사자의 장기를 적출해 수술하는 것 보다는 공여자의 간을 받아서 하는 생체 간이식의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단 말은 간 이식 수술을 한 번 할 때마다 2번의 수술이 필요하단 소리가 아닌가? 수술 인력이 2배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거기에 공여자의 건강도 고민해야 하고, 이식받을 환자의 건강도 생각해야 한다! 고민이 깊어졌다. 여기서 다시 껄끄러운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공여자는? 공여자의 건강에는 무리가 없을까?

“이식수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공여자의 건강입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수술을 하는데, 사람 건강에 위해를 가한다면 그 자체로 이미 어불성설(語不成說)이죠. 더구나 한국에서의 간이식은 생체간이식이 많습니다. 주로 혈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신중을 기하죠.”

한국적 현실. 그렇다. 다른 나라에 비해 가족 간의 유대가 깊은 한국에서는 이식의 공여자로 가족이 나서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기주의를 걱정하는 사회분위기이지만, 이럴 때 보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여자에 대한 건강문제는 이식이나 공여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다. 아니, 이유의 전부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간은 회복력이 뛰어난 장기입니다. 재생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공여자가 이식을 해주고 나면, 거의 원래 크기로 자라나요.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잘라내는 게 아닙니다. 공여자의 건강상태, 이식할 환자의 건강상태를 모두 고려하죠. 만약 간이식 때문에 고민하시는 공여자가 있다면,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어요. 저희들은 언제나 공여자의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고민합니다. 소중한 생명을 받아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과정 중에 있는 저희들이기에 언제나 생명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불안하다. 정말 안전한 걸까?

“(웃음) 만약 적극적으로 수술할 경우에는 담즙이 샐 수도 있습니다. 가끔 있는 일이죠. 그러나

이 담즙이 새는 경우에도 처치만 하면 그만입니다. 1주일이면? 아니 1주일 전에 퇴원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적어도 이 병원에서는, 내가 맡은 수술에서는 그런 일 없을 것이다.’란 표정이었다. 독심술인가? 아니다. 표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아우라였다. 회의실을 꽉 채운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느낌이랄까? 믿음이 확신으로 가는 대사과정 어디쯤의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소망을 들어봤다.

“연수 갔으면 좋겠어요.”

연수? 어딘가로 떠나겠다는 의미인가?

“환자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분명 장기만 있다면, 살 수 있는 환자들이 있어요. 그런데 장기가 없어요. 그럴 때 마다 안타깝죠. 그래서 연구를 계속하고, 논문을 발표하고 있어요. 혹시 이종(異種)장기이식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이종 장기이식의 사전적인 정의는 어떤 종의 장기나 조직을 다른 종에게 이식하는 방법이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1905년 어린 환자에게 토끼 콩팥을 이식한 사래가 있다(그 이후에도 이런 연구가 진행됐다). 물론 실패를 했다. 당장 이식 받은 사람의 면역체계에서 항체가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기증받은 조직을 공격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먼 이야기 같다고? 이미 돼지 심장판막과 돼지 인슐린은 임상에 널리 이용되고 있고, 1995년에 원숭이 골수를 이식 받은 에이즈(AIDS)환자는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다.

“환자들의 사연을 듣다보면, 그리고 현실을 보다보면...욕심이 생겨요. 오기라고 해야 할까요? 장기가 없어서 수술을 받지 못하고, 그 생명을 다하는 경우가 없었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서 개척할 수 있는 최단루트는 이종장기이식이라고 봤거든요. 그걸 연구해 보고 싶어요.(웃음) 그래서 연수를 꿈꾸게 되었구요. 그런 겁니다.(웃음)”

쑥스럽게 자신의 포부를 말하는 김종만 교수. 간 이식을 하다 보니, 그 한계를 보게 됐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 또 다른 한계를 ‘이종장기이식’이라는 희망으로 극복하기 위해 연수란 꿈을 꾸는 모습에서 그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소망대로 그의 연구가 꽃을 피울 수 있는 토양을 얻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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