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자녀양육 <김계현칼럼> 두 종류의 행복한 삶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특히 자기 자녀는 더더욱 행복한 삶을 영위하길 원한다. 불행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행복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
우리는 종종 ‘삶의 만족도’나 ‘행복도’를 조사한 국제 연구의 결과를 접하곤 하는데,
그 결과는 항상 “OECD 국가들 중 최하위 수준”이라는 기사를 보게 된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왜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일까?

 

 

뇌신경 연구에 관한 최신 보고서들에 의하면 행복감을 유발하는 생화학적 물질이 무엇인지,
그런 물질이 뇌신경에서 작용하는 과정이 어떠한지, 그리고 우리에게 좋은 느낌을 선사하는 뇌의 구조적 위치가
어디인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확실하게 알려지고 있다. 이런 지식은 우리가 행복감을 경험하는 매우 근본적인 즉
기저(基底) 메커니즘을 알려주는 것은 틀림없지만,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 아니다 나는 지금 불행하다”라는
느낌을 완전히 반영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행복감이든 불행감이든 우리가 그것을 경험할 때는 생화학적,
신경학적 기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 즉 인지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남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행복감(혹은 불행감)을 파악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남이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모습을 볼 때, 남의 자녀가 내 자녀보다 공부도 더 잘하고,
성격도 좋아 보일 때 불행감을 느끼게 된다. 즉, 행복감이나 불행감의 기준이 나 자신에게 있지 않고 외부에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성취동기가 강하다.
성취동기가 높은 사람은 자기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보다는 자기보다 잘나가는 사람에게 주목을 하며,
그와의 비교를 통해서 성취동기를 유지하고 실제로 그런 기제는 더 높은 성취를 이루는데 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대개 (뒤보다는) 앞을 보고, (낮은 곳보다는) 높은 곳을 보면서 삶을 살아가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자기의 삶에 대해서 행복감을 느낄 가능성보다는 불행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도록 장치가 되어 있다고 보인다.

 

자, 지금까지는 일반론이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의 삶 즉 개별론으로 글의 포인트를 바꾸어 보자.
당신 자신이 행복도 조사 설문지에 답변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자. 설문지 대답은 대개가 5점 척도나 7점 척도로 되어 있는데
항상 가운데 점수가 있고 (그저 그렇다, 중간이다로 표현), 한쪽은 만족(혹은 행복) 다른 한쪽은 불만(혹은 불행)으로 되어 있다.
당신의 대답은 어디에 위치할지 상상해 보자.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면서 실제로 점수를 부여해 보면 더 생생하게 이 글을 읽게될 것이다.

설문지에 대해서 당신의 점수가 중앙치로부터 조금이라도 불만족(혹은 불행)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이 부분을 여러 차례 음미하면서 읽어야 한다---당신의 불만족(불행감)은 당신의 성취동기에 도움이 되고 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불만족(불행감)과 당신의(혹은 당신 자녀의) 미래의 성취를 서로 교환할 수 있다면 당신은 기꺼이
당신의 불만족(불행감)을 지불하고 미래의 성취를 구입하지 않겠는가?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이 비즈니스 분야의 격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은 정말로 맞는 말이다.
당신의(혹은 당신 자녀의) 성취에는 분명 당신과 자녀가 지불한(pay) 댓가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런데 말입니다”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성취를 얻기 위해서 줄곧 불만족과 불행감을
지불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성취는 오지 않고, 앞으로도 올 것 같지 않는 사람은 어찌해야 합니까?

이런 경우라면 당신은 “몸조심”하는 쪽으로 가야한다.
성취가 올 것 같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불만족과 불행감을 감수하는 삶은 마치 주식 투자에서 너무 리스크(위험도)가 높은
투자를 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 경우 당신은 투자를 아끼고 보수적인, 자기 보호적인 전략을 취해야 하지 않은가.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적게 먹더라도 투자를 아끼는 전략”이 그것이다.

당신의 (당신 자녀의) 인생에서 성취라는 결과를 ‘포기’ (직업상담학에서는 이것을 네고시에이션이라는 용어를 쓴다.) 하였을 때
당신은 그 대신에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네고시에이션 즉 타협은 곧 한 가지를 포기하는 것인데, 한 가지를 포기하면서
다른 한 가지를 얻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타협이 완성된다. 돈을 많이 못벌고, 사회에서 알아주는 지위를 얻지 못하면
우리는 성취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그 대신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남에게(혹은 사회에) 이득되는 일을 하거나
(예를 들면, 노인 말동무 해드리기, 장애인 도와주기, 유기동물 돌보아주기 등등)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보람을 느끼고
행복감을 경험한다. 다시 말해서,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는 대신에 나의 행복감과 보람됨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서 하나의 좋은 거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렇게 “모 아니면 도” 방식의 선택을 강요받지는 않는다. 그 중간에 위치하는 선택지가 많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적으로 지위를 인정받지는 못하더라도 “입에 풀칠할 정도”의 “겨우 먹고는 살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주 많아진다. 겨우 먹고는 살 정도의 돈을 벌면서 나머지 시간은 내가 좋아하고 보람을 느끼는 일에
투자하는 삶도 한번 쯤 고려해 볼 만한 생활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삶의 만족도가 높고 행복감 지수가 높은 나라에 가보면 이와 같은 절충적인 생활을 선택하고
그런 삶에서 자신의 행복감을 지켜가는 개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삶의 방식이
여러 종류의 행복한 삶 중에 하나의 정형으로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약력]
김계현 교수,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육상담, 상담심리학, 교육심리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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