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자녀양육 <김용규칼럼> 연설문 외우기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꼽히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린 시절에 매우 열악한 교육을 받았다.
학교에 가면 고전을 송두리째 외우는 게 전부였다. 교재는 시인 베르길리우스, 소설가 아풀레이우스, 희극작가 테렌티우스 등이 남긴
라틴 고전작품들뿐이었다. 그 탓에 그는 과학과 역사와 철학을 아예 배우지 못했고, 당시 학자들의 공용어인 그리스어는 죽을 때까지도
익히지 못했다. 고대의 저명한 학자들 가운데 그리스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뿐이다.

여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처럼 열악한 교육을 받은 탓에 오히려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가 통째로 암기한 작품들은 구어체로 쓰인 서사시와 산문이었는데 하나같이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문장은 더없이 훌륭했다.
그는“결코 실수를 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칭찬을 받지 못할 글은 단 한 줄도 쓰지 않는” 인물이었다.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을 비롯한 라틴 고전문학은 마치 술통에 채워진 첫 포도주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신에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을 향기’를 남겼다. 복잡하고도 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간결하고
논리정연하게 표현한 문장들을 철저히 외우는 교육을 받은 이 소년은 나중에 청중과 독자들에게 눈물과 감동을 불러일으켜
설득하는 구어체 언어의 달인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가 평생 동안 이교도들과의 논쟁에서 상대를 무찌르거나,
수많은 저술과 설교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 더할 수 없는 무기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낭송과 암송의 문화가 사라져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시를, 그리고 연설문을 비롯한 산문들을 낭송하고 암송하자는 권유가 무척 생뚱맞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의 시들을 암송하며 이성적 인간으로 향하는 길을 닦았고, 우리 조상들도 어릴 때부터
천자문에서 시작하여 한시(漢詩)와 사서삼경을 낭송 또는 암송하며 군자의 길을 갔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옛것이라고 모두 구닥다리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낭송과 암송이 창의성의 산실이다.
뛰어난 시와 탁월한 산문들을 낭송하고 암송할 때, 우리의 뇌에서는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바둑기사들이 명인들의 대국을 복기 할 때,
동양화를 배우는 사람이 스승의 작품을 모사하거나, 작곡공부를 하는 사람이 걸작들을 필사할 때(이 일에는 서양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J. S. 바흐가 전범이다)와 같은 특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뇌신경학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반복해서 할 때 뇌는 대상자체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신의 패턴’을 모방한다. 그럼으로써 언어를 배우고 기예와 학문을 익히고 예술을 창조하게 한다.
이 말은 우리의 뇌가 어떤 식으로든 이 같은 정신의 패턴들을 모방하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언어와 학문과 예술을 익히고
창조할 수 있는 고등 정신기능이 아예 발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모든 창조는 정신의 패턴을 모방함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뛰어난 시와 탁월한 산문들을 자주 낭송하고 가능한 한 암송하는 습관을 길러주자.
문제는 무엇을 암송하게 하느냐 인데 (시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따로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산문 가운데서는
먼저 연설문을 추천하고 싶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명연설문들을 모아놓은 책은 아직 없다. 그러나 서점 영어교재 코너에 가면,
세계적인 명사들의 연설문을 모아놓은 책들이 있는데 영문과 한글 번역이 나란히 실려 있다.

이 책들에는 멀리는 페리클레스, 세네카와 같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정치가들의 연설로부터, 에이브라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베를린 연설 등을 비롯해, 가까이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까지,
내로라하는 연설문들이 수십 편씩 실려 있다. 이 연설문들은 모두 산문의 본보기이자 수사(rhetoric)의 향연이다.

대부분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이 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설문이 본래 대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짧은 시간 안에, 정확하고,
강렬하게 표현해야 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랬듯이, 이런 연설문들을 암송하면서 당신 아이의 뇌는
역사상 탁월했던 인물들이 가졌던 정신의 패턴들을 부지런히 모방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머지않아 뛰어난 말과 문장을
구사하게 될 것이며, 의사소통의 달인으로 자라날 것이다. 영어가 유창해지는 것은 뒤따라오는 덤이다.
그렇다면 당신도 함께 해보면 어떨까?

 

[약력]
김용규 철학자, 철학/신학전공
- 주요저서 :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웅진지식하우스,
생각의 시대,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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