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자녀양육 <김계현칼럼> 압박감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또다시 외국의 명문대 입학 관련한 사건이 터졌다.
“천재 소녀”로 알려진 한인 학생이 하버드대학과 스탠포드대학 미국의 양대 사립 명문에 동시 합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각각 2년 씩 두 개 학교를 나누어서 다니는 조건으로 합격했다는.. 그러나 이 소식이 널리 알려진지 불과 얼마되지 않아서
본인이 서류나 메일 등을 위조하고 부모에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밝혀지게 된 이야기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 한 구석이 아팠다.
그 스토리 안에는 부분적으로 옛날의 내 이야기도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성적표를 받아보는 순간 나의 눈은 가장 먼저 ‘석차’에 꽂히고, 그 다음으로는 ‘평균점수’를 확인하곤 했는데
그것들의 숫자를 ‘위조’하고 싶은 욕망을 나는 학교 다니는 동안 몇 번이나 경험했을까?
옛날 우리의 성적표는 사람 손, 즉 수기로 작성했기 때문에 ‘위조’가 가능했었고, 오늘날 미국 고등학교 성적이나 대학입시 관련은
대체로 이메일이나 웹사이트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부모를 속일 수 있는 구석이 있다.
구체적인 방법은 조금 다르지만 행위 자체와 그 행위를 일으킨 마음의 작용은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 여학생과 부모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성적, 석차(등수), 합격, 불합격... 우리는 이들 단어로부터 강력한 압박감을 느낀다.
공부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이 좋고, 좋은 대학 다니는 것이 “나쁜 대학”(이런 대학은 없다) 다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리고 좋은 직장 다니는 것이 취업 못하는 것보다 나은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는 성적, 등수, 합격여부에 압박감을 느끼면서
살 수 밖에 없다. 관건은 그런 압박감을 어떻게 조절하면서 그것에 짖눌리지 않고, 혹은 비정상적인 방법에 현혹되지 않고
(그 여학생의 경우처럼) 잘 적응하면서 지탱해 나가는가이다.

오늘의 글은 이 압박감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살면서 압박감으로부터 완전히 프리 (free)할 수는 없다.
‘압박감 제로’ 상태란 일상에서 존재하지도 않으며 있다하더라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일상에서 일정량의 압박감은 개인의 교감신경에 작용하여 깨어 있게 해주며 위험에 대응하도록 준비시켜주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압박감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압박감 자체를 줄이려는 방향보다는 압박감은 그대로 두고
그 반대되는 또다른 작용을 증가시키는 방향이 될 것이다.

압박감은 초조감을 동반하며 신체적 긴장 상태를 불러일으킨다.
이 부분은 우리의 ‘자율신경계’가 관여하기 때문에 개인이 의식적으로, 의지에 의해서 조절하려고 노력해도
대개의 경우는 조절이 금세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압박감, 초조감, 긴장의 반대가 되는 행위를 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대처 행위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호흡법인데 숨을 천천히 내쉬는 것이다. 우리가 스트레스 받았을 때 자기도 몰래 ‘한숨’을 쉬게 되는데 이때 숨을 한꺼번에 내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런 호흡방법은 초조감을 오히려 더 증가시킬 뿐 그것을 줄여주지 못한다. 내쉬는 숨을 천천히 내쉬어야
자율신경의 부교감신경계가 작용하게 되고 우리 몸에 생기는 긴장 반응을 줄여줄 수가 있다.

둘째 방법은 아주 유명한 방법으로서 ‘긍정적인 생각’이다.
긍정적 사고는 유명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고 적용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석차가 지난 달 3등이었는데 이번 달 5등으로 나왔다면 누구나 불쾌하고,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5등보다 못한 성적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내 앞에 선 1, 2, 3, 4 등만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긍정적 생각이다.

성적과 성취가 인생의 전체는 아니다.
우리에게 아픔을 느끼게 한 그 여학생과 부모는 아마도 성적과 성취 이외에는 자신을 지탱시켜주는
다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수 있다. 항상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그것으로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것이며, 본인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부모가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 스토리가 단지 그 여학생과 그 부모에게만 적용될까?
아니다. 이 글의 독자들의 이야기이며, 그 가정의 이야기이며, 그 학교의 이야기이다. 즉, 우리 자신 모두의 이야기인 것이다.
압박감을 느끼면서, 압박감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압박감을 느낄 때마다 호흡 한번 길게 내쉬고,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여전히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떠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흡법과 긍정적 사고를 사용하여 자신을 이완시키지 못하고, 그저 압박감에만 의존하여 자신을 몰아붙인다면,
잘해야 몇 달 정도까지는 더 버틸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에너지가 고갈되고 소진되는(burnout) 현상이 발생할 수가 있다.
인생은 결코 단기전이 아니지 않은가?

 

 

[약력]
김계현 교수,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육상담, 상담심리학, 교육심리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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