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자녀양육 <신정근 칼럼> 와각지쟁 (蝸角之爭)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오랜 연애 생활 끝에 결혼을 한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결혼 이후에도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어느 날 이 부부는 대판 싸움을 했다. 부부는 각각 자신이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이 옳고 배우자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동의를 구했다.
정작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얼굴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당사자들은 엄청 진지한 반면 듣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치약을 쓰면서 치약 튜브의 가운데 부분을 짜느냐 아니면 제일 꽁지 부분을 짜느냐에서부터 발단이 되었던 것이다.
남편은 꽁지 부분부터 짜야 치약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아내는 짜기 편하게 가운데 부분부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오래 사귀었지만 결혼 전에는 치약 튜브를 어디부터 짜는지 몰랐던 것이다.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자잘한 생활 습관부터 차이가 눈에 들어왔고, 급기야 자신의 습관을 기준으로 배우자의 습관을 고치려고 했던 것이다.
치약 튜브를 어디부터 짜야 할까? 사실 정답이 없는 것이다.
끝에서 짜나 가운데에서 짜나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중에 다 쓰지 않고 내버리지 않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자신의 사용법을 기준으로 삼고 배우자의 사용법을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되면,
치약 사용법은 부부 싸움의 주제가 될 정도로 심각해지는 것이다.

<장자 즉양>에 보면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는 고사가 나온다. 와각은 달팽이의 뿔을 가리킨다.
달팽이의 두 뿔은 각각 촉觸나라와 만蠻나라이다. 이 두 나라는 상대를 점령하기 위해 몇 만이 죽고 15일 넘게 추격을 벌였다.
장자가 말하는 이야기 속의 숫자를 따라가다 보면 “음, 큰 싸움이 벌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가 있다.
하지만 ‘달팽이의 뿔’에 주목하면 두 나라가 벌이는 싸움이 “그깟 나라들이 벌이는 싸움이 도대체 무슨 싸움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가 있다.
실제로 달팽이의 뿔을 관찰하면 그 크기가 작아서 “점령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점령한다고 해도 별다른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약을 어디부터 짜느냐를 두고 싸움하는 부부처럼
다른 뿔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달팽이 뿔의 두 나라는 심각하고 진지할 수 있다.
다르다는 기준으로 보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제각각이다.
이 때 우리는 공적으로 책임을 묻거나 일반적인 규칙을 어기지 않는다면 그 나머지는 개개인의 문제로 간주하고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친하다”, “습관”이라는 이유로 지극히 사적인 것까지 간섭하고 일치할 것을 요구하게 되면 사람 사이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피곤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회사나 학교에서 경쟁과 성적에 많이 시달린다.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많이 받으니 많은 일들의 기준이 단순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지극히 사소한 것조차 두 눈에 불을 켜고서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이 예민해서 작은 것조차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길을 가다가 “째려봤다”는 이유로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장자는 사소한 것이 중요한다고 목숨 거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넨다.
“마음이 끝이 없는 곳에 노닐게 되면, 넓다고 하지만 사방으로 막힌 땅을 보게 되더라도 있는 듯 없는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지유심어무궁知遊心於無窮, 이반재통달지국而反在通達之國, 약존약망호若存若亡乎?) 혹자는 장자의 말을 보고
“말이 좋지 현실에서 이럴 수 있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주말에 산에 오르거나 비행기를 타고 차창 아래로 펼치는 땅위를 바라보라.
땅위에서 보면 마천루摩天樓처럼 보이던 빌딩도 산과 비행기에서 보면 성냥갑만큼 작아 보인다.
우리는 너무 땅위에 붙어사느라 높은 곳에 바라보는 여유를 잃고 사는 것은 아닐까!

 

 

[약력]
신정근 교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동양학부
- 주요저서 :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21세기 북스
                   논어 -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랑이다, 한길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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