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자녀양육 <박경순 칼럼> 철들기와 성숙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성숙이라는 것이 ‘어른스럽다’는 말로 표현된다면 이는 성숙의 지극히 일부분만을 설명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숙이란 아주 어린아이의 모습부터 현재 나이까지의 모습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이들을 적재적소에 표현할 수 있는 융통성을 말한다.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익기 전에 과일을 따는 경우가 있다. 풋과일에 열이나 약품 처리를 해서 억지로 익히게 된다. 최상의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아이들이 일찍 철들면 부모로서 그만큼 고마운 것은 없다. 하지만 그 철드는 과정이 풋과일이 익는 것과 같다면 좀 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제 나이보다 일찍 철이 든다는 것은 무언가 필요한 것을 생략한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필수 영양소가 빠진 음식 같아서 언젠가 그 영양소의 결핍으로 인한 대가를 성장하면서 치르게 된다. 철이 일찍 든다는 것은 부모에게만 좋을 뿐, 아이 자신에게는 불행일 수 있다.
 
성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유아들의 기분은 너무 단순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기분 좋으면 마음속에 동그라미로 채색이 되고, 나쁘면 가위표로 채색이 된다. 어릴수록 신체적인 편안감과 관련이 더 깊다. 안락하면 좋고, 불편하고 배고프면 기분이 나쁘다. 인간의 감정은 의외로 그렇게 간단하게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중요한 것은 그 감정들이 평생을 좌우할 
‘감정의 길(回路)’를 만들기 때문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의 마음이 그렇다. 기분좋은 감정을 제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데, 기분 나쁜 감정은 뱉어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엄마 때문이야’. 그래서 엄마는 감정의 배설물을 받아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자존감’이란 동그라미의 경험의 수와 비례한다. 기분 좋은 경험이 많을수록 자존감도 견고해진다. 따라서 엄마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나쁜 감정의 찌꺼기를 받아서 맑은 감정으로 정화시켜 다시 되돌려 주는, ‘감정의 여과기’이다. 
 
초자아나 도덕관념을 형성하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 아이의 마음 속에 관대한 초자아가 형성되는가, 엄격한 초자아가 형성되는가, 다시 말해, 아이가 인자한 할아버지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지, 아니면 가혹한 고문관을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게 되는지 그 시작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표면적으로는 ‘철이든 것’처럼 보이는 것이, ‘엄격한 고문관’을 초자아로 모시게 되는 결과일 수 있다. 잘못할까봐 항상 두려워하거나 노심초사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철이든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성숙과는 좀 거리가 있다. 때로, 행동이 정 반대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아예 도덕성이 없는 아이로 성장하는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을 엄마한테 보냈는데, 거기에 엄마의 불안까지 얹어서 돌아오면 아이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문을 아예 없에 버리는 것이다. 반성할 줄 모르고, 죄책감도 느끼려하지 않는다. 눈앞에서 잘못했다고 하고, 돌아서면 제멋대로 해버린다. 
 
상품화된 풋과일처럼 일찍 철이 들어버리는 경우와 아예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아이는 ‘심리적인 샴 쌍둥이’이다. 누구도 나의 불안을 감당해주는 
‘마음의 여과기’가 없이 자란 아이이다. 샴 쌍둥이처럼, 이들은 성인이 되어 친구나 연인관계가 되기도 하고, 부부가 되기도 하고, 가족 속에서 한 아이는 조숙하게 철드는 아이로, 다른 아이는 망나니로 자라게 되는 가족 역동을 만들기도 한다. 
 
빗장을 잠그면 문을 잠가버린 부분은 나이를 먹어도 성장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성인 아이’, ‘성인 속의 내면 아이’등으로 불리게 되는 것들이다. 설익은 채 따서 익힌 과일처럼. 
 
 
[약력]
박경순 교수, 서울여자 대학교 특수치료 전문대학원 
미국 NYU Psuchoanalytic Institute에서 정신분석 훈련
- 주요저서 : 엄마 교과서,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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