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자녀양육 <신정근 칼럼> 조선시대 판 기러기아빠 정약용의 자식교육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형편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교육열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열이 꼭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닌데도 외국인들이 부러워하는 걸 보면 우리가 자신을 잘 모르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교육열은 멀쩡한 가정을 쪼개게 만들었다. 아이 혼자 외국 가는 게 마음에 놓이지 않으니 엄마와 아빠가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외국에 가서 아이의 유학 뒷바라지를 하고 아빠는 한국에 혼자 남아서 학비를 송금하는 것이다. 
이런 아빠를 기러기 아빠라고 한다.
상황은 다르지만 기중기를 설계해서 수원 화성을 단시간에 축조하는 등 조선 후기의 실학자도 정약용도 일종의 기러기 아빠였다. 
그는 정조와 파트너를 이루어 조선 후기의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정조의 죽음과 더불어 끝이 났다. 그는 신유사옥辛酉邪獄 또는 신유박해辛酉迫害(180 1)로 거의 18년간, 즉 40세에서부터 57세까지 귀양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는 요즘 관광지가 된 강진의 다산초당 등에서 고향으로 날아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유배 상태에 있었다.
정약용은 강진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자식 교육이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가 옆에 있어도 자식이 엇나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 아비가 자식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그는 자신의 가문을 청족(淸族)에 상대되는 폐족(廢族)에 바라보는 상황에서 ‘자식의 공부’는 단순히 학업 성취가 아니라 가문의 성쇠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었다.
오늘날 기러기 아빠는 송금하는 걸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기러기 아빠는 홀로 생활하면서 고독과 싸운다. 
온 힘을 다해 자식을 키웠지만 함께 있지 못한 원죄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다산도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의 원죄를 인정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았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편지 쓰기였다. 그는 상황에 따라 먼저 보내기도 하고 자식의 답장을 보고 훈계를 하기도 하고 아니면 소식을 전해 듣고서 염려하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한국고전종합DB 사이트의 「여유당전서」 번역본 또는 박석무 옮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작과비평사, 2001) 참조)
정약용은 여러 차례의 편지에서 책 읽는 독서의 방법과 순서만이 아니라 그 의의와 가치를 역설했다. 먼저 그의 말을 들어보자.
“폐족으로서 잘 살아가는 길은 오직 책 읽는 것 하나밖에 없다. 책 읽기는 사람의 일 중에게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이다.[독서시인간제일청사讀書是人間第一件淸事] 잘 사는 집안의 자제들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시골의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벼슬하는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도 있는데다 중년에 재난을 만난 너희들 같은 젊은이들만이 진정한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다.”(박석무, 35~36쪽 참조)
 
같은 책이더라도 개인의 경험과 인생을 녹여서 읽으면 그 의미가 남다르다. 밥도 그냥 먹는 것일 수 있지만 굶주린 사람에게 밥은 생명이 되는 것이다. 정약용은 자식들이 신세한탄을 하면서 “우리가 공부한다고 뭔가 나아질 게 있겠어!”라며 자식이 자포자기 할까봐 걱정을 했다. 고난은 불행한 일이지만 세계를 더 깊고 넓게 만날 수 있는 시련이기도 하다. 정약용은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지 않고 자식들이 자신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편지 교육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 부모는 시간없다고 용돈은 집어줄지 알지만 그 이외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약력]
신정근 교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동양학부
- 주요저서 :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21세기 북스
                    논어 -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랑이다, 한길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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