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자녀양육 <신정근 칼럼> 소중한 적자지심(赤子之心)을 지키고 가꾸자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우리는 사람구실을 하려면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서양을 따지지 않고 인생에서 배움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힘주어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임신 단계에서 태교를 하고, 학교 가기 전부터 동화를 읽어주고 글자를 깨친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국어, 수학 등 여러 과목을 배우면서 체계적인 지식을 단계별로 쌓게 된다.
이런 과정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유치원 끝나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에서 시작해서 대학까지 가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언젠가부터 평생교육이라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하니 배움에는 정말 끝이 없나 보다. 자칫 “배우다가 죽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배움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을 왜 배워야 하는지 의문을 가져볼 만하다.  오늘날 아이들은 ‘학습 노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배움에 치여 살고 있지만 정작 학업을 성취한 개개인도 행복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의 얼굴도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배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한번쯤 이 질문을 어떤 대답을 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과연 많이 배워야만 하는 것일까?” “많이 배운 사람이 과연 좋은 사람일까?” 
부모라면 『삼자경三字經』에 나오는 “기르고 가르치지 않으면 부모의 잘못이다. 가르치되 엄격하지 않으면 스승의 게으름이다.”
(養不敎, 父之過. 敎不嚴, 師之惰)라는 말로 가르쳐야 하는 이유를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으로 가르치고 배워야하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해외로 배낭여행을 가보자. 해당국의 언어를 알면 불편한 일이 줄어들 것이고 그 문화에 익숙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많이 배운 것이 분명 쓸모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어와 문화를 모른다고 해서 배낭여행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바디 랭귀지를 하면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알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물으면 문화를 깊이 느낄 수 있다.
또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해서 정보가 많다고 해서 꼭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를 통해서 변수와 경우수를 줄여서 선택지를 두세 가지로 압축할 수는 있다. 최종적으로 두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은 꼭 많이 배웠다고 해서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많이 배우면 좋겠지만 꼭 많이 배워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배움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 관찰, 경험, 교제, 독서, 장난, 게임, 사랑, 갈등, 질투 등 많은 활동에서 배울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오로지 학과 공부만을 배움으로 고집한다면, 지능은 발달하지만 인격의 통일성은 떨어지게 된다. 이로써 아이와 어른이 독자성을 가지면서 순차적으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어른의 경계가 희미한 ‘어른-아이’와 ‘아이-어른’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맹자』 「이루(離婁)」하를 보자. “대인이란 갓난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孟子曰: 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맹자가 아이 이후 가정 교육과 사회 교육의 필요성과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맹자는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지 않아도 이미 중요한 삶의 자산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을 돌보지 않고 자꾸만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중요한 것을 가진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아이에게 없는 것을 가리키기 이전에 아이에게 이미 있는 것을 소중히 가꾸도록 해보자. 너무 가르치려고 들다가 소중한 것을 놓치기 십상이다.
 
[약력]
신정근 교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동양학부
- 주요저서 :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21세기 북스
                   논어 -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랑이다, 한길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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