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자녀양육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자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자가용이 없을 때 나는 고향을 가려면 멀고 머나먼 여정을 거쳐야 했다. 먼저 진주나 의령처럼 주위의 큰 도시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고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서울 경기에서 출발하면 반나절은 거뜬히 잡아먹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고향의 마을 어귀를 보는 순간에 그간 쌓였던 피로가 싹 가치며 새로운 힘이 솟아났다. 어린 시절에 외가를 갈 때도 그랬다. 외가에 가는 버스는 없던 시절이라 남강을 건너서 1시간 넘게 걸어야 외갓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개를 넘고 산허리를 돌고 마을을 지나도 외갓집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놀며 쉬며 한참 걷다보면 어느 새 외갓집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팔다리에 힘이 어디 숨어있었는지 형제랑 약속이나 한 듯이 뛰어가곤 했다.
서울에 살게 되자 아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생활했던 서울 경기를 고향으로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설과 추석의 명절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을 찾았던 터라 나의 고향에 낯설어하지 않았다. 도시와 달리 시골에 오면 직접 수박을 따서 먹기도 하고 강가에 가서 불을 피워놓고 밤하늘의 별을 세어보기도 했다. 그런 추억이 있었는지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이 자신들을 부러워한다고 한 번씩 말하곤 했다. 엄마 아빠가 모두 
도시에서 태어났으면 아이들은 캠핑, 여행 등 잠깐 시골을 체험하기는 하지만 그곳에 정을 붙이며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럼 방학 때 친구랑 할머니 집을 한 번 찾아가지!”라고 말하곤 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이전에 친구의 고향을 간다는 것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다들 학교 성적과 입시에 매여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이삼일 시간을 뺀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 딸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뒤에 옛날에 내가 한 번씩 했던 말을 상기시키면서 방학 때 친구들과 할머니 집을 가겠다고 했다. 막상 실행 가능성이 보이자 나는 걱정이 되었다. 시골이 도시와 달라 불편한 점이 많을 텐데 도시 아이들이 잘 견딜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딸과 친구들은 할머니 집을 2박3일 동안 머물렀다. 하루는 별똥별 쇼를 본다면서 백사장에 누워서 새벽 5시까지 하늘을 보았다고 한다. 말대로 쏟아지는 별을 보며 딸과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예정된 시간이 다 되고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 친구들이 돌아가기 싫다고 하고 내년에 또 오자고 했다고 한다.
딸과 친구들이 이번에 시골에 2박3일을 보냈지만 그것은 여행에서 겪는 체험과 다르다. 시골 체험은 비용을 내고 시설을 이용하며 시골 사람과 교류 없이 잘 쉬었다가는 것이다. 불편하지 않아야 좋은 체험이 된다. 할머니 댁 방문은 시골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일정의 제한 없이 편하게 지내는 것이다. 불편을 불편으로 느끼지 못하고 그런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또 하나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아이들은 인생을 살면서 힘겨운 일이 생기면 그날 잠자지 않고 별을 헤아리던 그 밤을 생각하며 힘을 얻을 것이다. 딸과 친구들은 마음에 쉽게 지워지지 않을 그림을 몇 장 그렸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중에 이런 곳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도시와 다른 시골의 삶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북송시대 곽희(郭熙)와 곽사(郭思) 부자가 쓴 회화 비평서 『임천고치(林泉高致)』를 보면 산수를 넷으로 나눈다. “갈 만한 곳, 볼 만한 곳, 노닐 만한 곳, 머물 만한 곳”(山水有可行者, 有可望者, 有可遊者, 有可居者) 그들은 그림이 앞의 둘보다 뒤의 둘을 느끼게 그리는 게 좋다고 보았다. 뒤의 둘이 더 드물기 때문이다. 할머니 집을 찾아가기 전에 딸과 친구들에게 시골은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갈 만한 곳이거나 볼 만한 곳이었다. 방문 이후에 시골은 노닐 만한 곳이자 머물 만한 곳이 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주는 게 좋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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