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자녀양육 <신정근 칼럼> 장례식에서 삶을 통째로 만나다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장례식장과 장례문화가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 장례식장은 비좁고 냄새나서 가기가 꺼려지던 곳이었지만 지금 쾌적하고 밝게 꾸며져 있다. 예전에 조문객도 상갓집에 오면 술을 거나하게 먹고 큰소리로 떠들곤 했지만 지금은 음식을 먹지 않은 채 조의만 표시하는 사람도 많다. 전체적으로 보아 상례와 장례가 깔끔하고 매끈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 다른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장례식장에 아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아마 자녀수가 많지 않아서 장례식장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중고등생만 되면 부모와 자녀 모두 성적에 신경을 쓰느라 아이가 장례식장에 오래 있지 못하게 한다.
사람이 인생을 두 가지 방식으로 살아간다. 하나는 자신의 부분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전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전자는 힘을 한꺼번에 쏟아내지 않고 아끼는 것을 말하고 후자는 온힘을 다 써서 쓰러질 듯이 사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프로 선수와 어린이가 축구 시합을 한다면 프로 선수는 자신의 역량을 100%가 아니라 20~30%를 발휘할 것이다. 육상과 수영의 경우 우승 후보는 처음 예선전에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을 들이다가 결승전에서 모든 힘을 쏟아 붓는다. 적절한 힘의 안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도 일상과 직장에서 대충대충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혼을 실어서 자신이 맡을 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앞에 두고서 대충대충 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죽음은 사람에게 다음의 기회와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마지막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죽음하면 쾌활할 수 없고 침울하고 진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죽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전체를 생각하게 한다. 당장 죽을 상황인데 며칠 뒤의 약속이 뭐가 그리 중요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요즘 죽음은 철저하게 사람의 시야에서 가리어져 있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때 장례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른이든 아이이든 자연스럽게 인생을 통째로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이 무엇일까?”나 “도대체 왜 사는 것일까?”에서부터 “내가 잘 사고 있는 것일까?”나 “내가 죽으면 사랑하는 가족은 어떻게 될까?”에 이르기까지 나를 전체로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을 정화시킬 수 있는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다.

「논어」를 보면 임방이 공자에게 전통 예절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물은 적이 있다. 공자는 임방의 질문이 정곡을 찌른 것으로 칭찬하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전통 예절은 호화니 사치를 부리기보다는 차라리 꾸밈없이 수수한 것이 낫다. 상사는 매끈하게 진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참으로 슬퍼해야 한다.”(林放問禮之本. 子曰: “大哉問! 禮, 與其奢也寧儉, 喪, 與其易也寧戚.”)

상례와 장례는 사람에게 있어서 아무렇게나 대충 지낼 수 없는 절차이다. 이 절차가 한 틈의 실수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어 모든 것을 ‘끝내 버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절차를 통해서 나와 고인의 관계만이 아니라 나의 전체를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시간은 사람이 사회의 제반 관계로부터 한 발짝 빗겨나서 자신을 성찰하는 교육의 장이 되는 것이다. 이때 성찰했던 것이 이후의 삶을 알차게 이끌어가는 자원이 될 수도 있다.

두 가지 장례식장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한 곳: 아이가 식장을 뛰어다니면서 다소 소란스럽게 굴고, 부모가 한 번씩 만류하는 장면이 있다.
다른 곳: 아이 모습은 보이지 않고 식장이 조용하고 차분하며 사람들이 오고간다.

당신의 장례식장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겠는가?

[약력]
신정근 교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동양학부
- 주요저서 :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21세기 북스
                  논어 -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랑이다, 한길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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