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자녀양육 <신정근 칼럼> 모순이 되지 않는 자녀의 성공과 행복의 길은?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한비자는 사상서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내용이 딱딱하리라 생각한다. 생각과 달리 책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다. 
한비가 한나라의 왕족 출신이기에 왕실 도서관에서 여러 나라의 역사를 두루 읽으면서 말더듬이라서 가진 언변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초나라 사람이 시장에서 방패와 창을 팔았다. 그이는 큰 소리로 “자신의 방패는 참으로 견고해서 어떤 것도 뚫을 수 없다”라고 말하고 또 “자신의 창은 참으로 날카로워서 어떤 것도 뚫을 수 있다”라고 외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이 “당신이 파는 창으로 당신이 파는 방패를 뚫어보시오”라고 말했다. 그제까지 콘 소리를 치던 장사가 아무런 말도 못했다.
 


난편(難篇) 이것이 바로 창과 방패, 즉 모순(矛盾)이란 고사이다. 두 가지가 모순 관계에 있다고 하면 하나가 가능하면 다른 하나는 가능하지 않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서 모순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한다. 
 
또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언행에 모순을 찾아내면 시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또 모든 교육의 목표가 대학 진학에 맞추어져 있다.
“왜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하시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러면 아이가 행복하게 살지 않겠어요?”라고 말한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지금 중학교와 고등학교 생활이 행복해요?”라고 물으면 “행복하다”라는 대답이 그렇게 받지 않다.
 
부모와 아이의 생각을 합치면 좀 묘한 결론이 나온다. 
부모는 아이가 지금과 앞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뒷바라지를 하는데, 아이는 정작 지금 행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해한다.
 
한비보다 앞선 선배 사상가로 묵자(墨子)가 있었다. 묵자는 자기 시대의 정치 지도자와 일반 사람들 의 행위를 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모두 국정의 우선순위를 나라에서 이익이 되는 일을 일으키고 피해가 되는 일을 줄이자는 ‘흥리제해(興利除害)’에 두었다.(겸애(兼愛)) 그들은 이웃나라와 전쟁을 벌이면서도 ‘흥리제해’를 부르짖었다. 우리가 지금 이웃나라를 공격하지 않으면 저들이 우리를 언젠가 쳐들어올지 모르므로 먼저 상대를 공격하는 게 피해를 줄이고 이익을 늘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묵자는 정치 지도자의 행위를 모순으로 보였다. 지도자들이 흥리제해를 한다고 하면서 왜 전쟁처럼 제리흥해(除利興害)하는 방식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누군가 나의 이익을 빼앗아갈지 모르므로 남에게 내 것을 빼앗기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했던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남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뺐고 빼앗는 전쟁은 없어지지 않고 날로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묵자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명실상부하게 흥리제해할 수 있는 길을 제안했다. 내가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남도 내 것을 빼앗지 않는다면 굳이 전쟁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상호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묵자는 서로 각자 자신처럼 사랑하는 위인유위기(爲人猶爲己)와 상호 이익을 이루는 겸애(兼愛)의 길로 흥리제해를 이룩하고자 했다.
 
지금 우리는 남이 과외(반칙)를 하는데 나만 규칙을 지키면 결국 나만 손해가 된다는 논리에 서있다. 이 논리에서 부모가 생각하는 행복이 자식에게 불행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묵자의 발상은 우리가 오늘날 교육의 역설을 풀고자 하는 데에도 실마리를 제공한다. 나만이 아니라 더불어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할 때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데에서 출발할 일이다.


[약력]
신정근 교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동양학부
- 주요저서 :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21세기 북스
                   논어 -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랑이다, 한길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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