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심장이식 후 두 번째 삶을 시작한 나의 또 다른 ‘엄마’ 이야기 / 삼성서울병원 심장뇌혈관병원 최남경 전문간호사



“저희 항공사에서 이런 상황의 승객 탑승 경험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13시간의 비행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인공심장이식 수술을 받고 드디어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 중년의 여성에게 예상치 못한 항공사의 답변이 도착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갈 그 날만을 기다리며 견딘 4개월여의 힘들었던 순간들이 물거품이 될 상황. 
비행기 탑승이 불투명한 이 때 최남경 전문간호사가 나섰습니다.

“환자의 치료를 맡고 있는 전문간호사입니다. 제가 애틀랜타까지 환자와 동행을 할 것이니 탑승을 허가해 주십시오.”

의사의 소견서와 구두 설명이 여러 차례 오가면서 병원과 전문 의료진이 책임지겠다고 설득한 끝에 이 여성의 비행 탑승은 허가가 났고, 그렇게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환자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미국으로의 여정에 동행하게 됩니다.


 
성공적인 수술 경험을 가진 유일한 심장전문간호사
그리고 국내 최초로 성공한 3세대 인공심장 LVAD

 
최남경 전문간호사가 처음 이 환자를 만난 것은 5월 말. 

“이 환자는 LVAD(인공심장)수술을 하지 않고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입니다. “

미국에 거주 중인 이 중년의 여성은 고향인 한국을 방문하였다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에크모 시술까지 받은 상황.
마지막 보루로 인공심장 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환자의 컨디션을 매일 확인하며 수술을 준비하였습니다.

LVAD(인공심장) 수술은 국내에서 아직 경험이 많지 않으며, 특수한 의료기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모든 의료진뿐만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도 수술 전부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요. 수술 시간은 비록 4-5시간으로 짧은 편이지만, 환자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고, 수술팀을 조직하고 교육하며, 장비를 준비하고 점검하고 수술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준비하는 데만 3주 이상이 걸렸습니다.

이미 3번이나 수술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이 있었지만 새로운 디바이스로 행해지는 첫 수술을 위해서는 모든 시스템을 완벽히 갖춰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수술 준비의 마지막 단계인 보험 승인이 완료된 날,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이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을 환자를 찾아갔습니다.
그 첫 만남에서 환자가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않고 수술에 집중하도록 직접 만든 그림 및 자료, 수술과 관련된 장비를 보여주며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앞두고 환자와 보호자의 걱정이 클 수 밖에 없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당시 환자의 유일한 보호자인 딸은 미국으로 급히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어머니를 두고 떠나지 못하는 딸을 위해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자신있게 결단을 내립니다.

“따님께서는 미국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병원에 있는 어머님은 오히려 안전합니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는 따님이 꼭 필요합니다. 어머니 옆에서 제가 모든 것을 도울 테니 따님께서는 저를 믿고, 미국에 돌아가셔서 가족들과 함께 수술 후 어머니가 생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세요. 회복된 어머님을 모시고 제가 미국으로 가겠습니다”


많은 우려와 기대 속에서 드디어 인공심장이식이 시행되던 날, 수술집도의와 최남경 전문간호사를 비롯한 수술팀의 완벽한 트레이닝과 철저한 관리, 팀의 유기적인 시스템은 3세대 LVAD의 첫 수술을 대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의식 회복, 인공호흡기 제거, 식사 등 수술 후 경과도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습니다. 수술이 잘 끝났지만 최남경 전문간호사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환자가 장거리 비행을 견딜 정도의 체력으로 회복시키는 것.

6주 정도면 충분히 비행기를 탈 수 있겠다는 의료진의 결정에 따라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고, 회복을 위한 본격적인 재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항공사에서는 철저한 의료진의 대비를 요청했고 이를 책임져야 하는 최남경 전문간호사로서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우리 6주 후에는 꼭 비행기 타고 미국으로 가는 거에요.”
 
이미 긴 병원 생활로 인해 체력이 약해져 있던 환자에겐 걷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미국의 집으로 돌아갈 그 날을 기다리며 재활 운동과 후속 치료를 잘 할 수 있도록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계속해서 의지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출국을 위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그때부터 최남경 간호사는 환자와 24시간을 공유하였습니다. 환자 곁에서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유일하기에,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상태가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잘 케어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최남경 간호사에게는 '내 가족, 내 엄마'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핸드폰도 없이 병원 생활을 하는 환자에게 가족들과 만나는 창구는 오로지 최남경 전문간호사 뿐,
중간중간 회복하는 과정을 사진 찍어서 가족에게 보내며 안심시켜 주기도 하고 통화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지나가다 예쁜 신발이 보이면 딸 된 마음으로 어머님이 신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사실 저희 친정엄마가 살아계셨으면 연세가 비슷하시거든요. 자연스럽게 ‘내 엄마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녀가 더 마음이 쓰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기계와 함께 다시 시작될 환자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기적적으로 두 번째 삶을 살게 되셨지만 남은 삶 동안 많이 불편하실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물질적으로 도와드리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었어요. 환자 분이 앞으로의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너무나 중요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환자들보다 마음이 쓰이고 더 옆에서 돕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 먹던 번데기가 생각난다던 말을 놓치지 않고 통조림을 요리해 가져다 드리기도 하고,
회복되면서 먹고 싶어 하셨던 냉면을 먹으러 함께 외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출국 전날까지도 공항을 방문해 동선을 체크하며 미국까지 무사히 가기 위한 예행연습을 하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 6주 동안 출국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두 번째 삶을 시작한 어머니의 마음에 희망을 심다.
“잘 회복하셔서 한국 오세요. 제가 기다리고 있을게요.”

 
2015년 7월 26일,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환자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전문간호사로서 큰 고민이었다는 미국행.
하지만 환자의 집이 미국이라는 지리적 제약 때문에 안전점검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꼭 같이 가서 직접 체크하고, 앞으로 다니게 될 미국의 병원에도 들러 환자의 수술 결과와 상태를 전하고 와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인공심장이식 환자는 퇴원하고 집에서 안전하게 생활하기 위해 미리미리 점검해야 할 것들이 많거든요. 침실은 어디인지, 문턱은 없는지, 전원을 연결해서 주무셔야 하기에 전원 장치나 전류 흐름이 안정적인지, 정전기나 물 관련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가정환경을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더라고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이렇게 해야 저와 환자 모두 안심할 수 있기에 항상 진행하고 있어요. 이번 환자 분은 집이 미국이라는 아주 특별한 경우였죠. (웃음) ” 

비행 중 그녀가 가장 신경 쓴 것은 시차로 인한 투약 스케줄.

“미국 알라바마와 한국은 13시간의 시차가 있어서 약 먹는 스케줄도 모두 다시 짰어요. 혈당도 재고 인슐린도 맞아야 하고, 스케줄이 맞지 않으면 아주 위험한 약도 있어서 교정을 해놓지 않으면 아침 약을 밤에 드실 수도 있거든요. 이 스케줄을 미국 간호사에게도 설명해야했어요."


▲ 최남경 전문간호사가 작성한 환자의 투약 스케줄


그렇게 13시간의 비행과 6시간의 이동 끝에 드디어 환자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던 미국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도착 직후 그녀는 바로 환자가 주기적으로 가게 될 현지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시행된 환자의 수술과 치료과정을 상세히 들은 현지 의료진은 수술 결과에 놀랐고,
6주 만에 이렇게 장거리 비행을 할 정도로 재활 치료를 마친 것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만성 심부전으로 큰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6주의 기간을 둔 것은 사실 일상생활을 할 정도로의 회복을 말한 것이지, 회복 직후 13시간의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런 케이스는 실제로 없죠. 거의 처음일거예요, 환자분도 저도 정말 눈물겨웠던 노력의 결과죠.” 

병원에 다녀온 직후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이제 자신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할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철저히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며칠에 걸쳐 인공심장과 연결된 기계 충전하는 법부터, 수술 부위의 소독, 약 챙겨 먹는 법, 여러 상황에 대비한 가이드 등을 상세히 알려주었습니다.

“돌아오는 날 새벽에는 짐을 싸면서 어머님이랑 따님, 그리고 저, 셋이서 펑펑 울었어요. 회복하는 동안 의료진으로서, 또 딸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챙겼기에 어머니께서도 저에게 의지하고 나름 잘 극복을 하셨는데, 제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많이 섭섭하셨던거죠.”

그런 환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에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새로운 희망으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회복 열심히 하셔서 다시 한국으로 놀러 오세요. 이제는 저를 딸이라고 생각하시고 오시면 되요. 
한국에 갈 곳이 있다는 것, 만나야 할 가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그렇게 생사의 갈림길에서 새로운 삶을 함께 맞이한 중년의 여성과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피보다 진한 가족이 되어 있었습니다.  
곧 한국 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는 어머니의 다짐을 들으며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환자의 인생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의 심장전문간호사,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사회 전반적 인식이 개선되길.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현재도 매일 메신저로 환자의 안부를 묻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공심장과 연결된 모니터가 상태를 바로 알려주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셨고, 잘 지내고 계세요.”

그녀 역시 일상으로 돌아와 심장전문간호사로서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단어, 전문간호사.
환자가 병원에 온 순간부터 수술 및 퇴원까지의 전반적인 과정을 코디네이션하는 전문 간호사는 환자 치료의 전 과정을 함께 합니다. 
환자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만큼 늘 환자를 통해 간호사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하는데요.

“심장전문간호사가 된 후 가장 다른 것은 제가 환자분들의 인생에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을 하는 겁니다. 입원과 수술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상담도 진행하고, 곁에 있는 가족을 위한 심리적 지지나 컨설팅도 해줍니다. 시시때때로 의논하고 상담하고, 교육도 하고 수술 후 외래 진료를 오실 때마다 직접 나가서 검사 하나하나까지 챙기거든요. 그러니 인공심장 이식 수술을 계기로 절 만나는 순간부터 환자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제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되는 거죠. 지금까지 세 분의 아버지와, 이번 수술로 한 분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특히 이번 환자 분을 계기로 심장환자분들이 저에게 가족만큼 큰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죠. 전문간호사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이곳에서 더 열심히 움직일 것입니다.”



이번 사례를 통해 인공심장이식에 대한 한국 의료 수준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아직 외국과 비교해 봤을 때 가야할 길이 많습니다. 실제 많은 환자들이 비싼 수술비를 감당하면서 삶을 연장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1~2년을 더 살며 자식을 힘들게 하느니 말겠다.’라며 수술을 포기한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인공심장이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인공심장수술을 한다고 해서 원래의 젊고 건강했던 컨디션으로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의학이 발달한 만큼 만성 심부전 환자도 좀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걸 많이 알려야죠. 삶이 가치 있는 만큼 인생을 마무리 해야 할 순간에 더 존엄해 질 수 있으니까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남은 여생 동안 가족들과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하는 바람이 큰 겁니다.”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3세대 LVAD(좌심실 보조장치)와 같은 인공심장을 이식 받는 것은 심장이식에 비해 나이 제한이 없기 때문에 가족의 지지와 국가의 의료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며, 생명의 가치를 존엄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란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렇기에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매우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좌심실 보조장치 기계를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불편하지 않은 삶을 살도록 지켜드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요. 전문가로서 이분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부분을 확인하고 미리미리 도와주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전체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놓는 게 시급합니다. 앞으로 그런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어요”

전문가로서 냉철하게 수술과 치료를 책임지고 환자의 삶을 섬세하게 케어하는 최남경 전문간호사는 지금도 병원를 지키고 있습니다. 

환자를 위해 전인적 간호를 실천하는 그녀에게 앞으로도 많은 제2, 제3의 가족들이 생기겠죠.
최남경 전문간호사와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환자와 가족,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희망들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녀의 뜨거운 열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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