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불가능했던 고령의 비후성심근증 환자

극심한 호흡곤란에서 급사의 위험까지,
치료가 불가능했던 초고령의 비후성심근증 환자,
심근절제술로 답을 찾다.
치료가 불가능했던 비후성심근증 환자 심근절제술로 답을 찾다
"선생님, 이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내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단 하루만이라도 누워서 자고 싶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은 후, 마지막으로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이 79세 고령의 할머니는 김욱성 교수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물복용과 정기 검사로 조절해오던 비후성심근증이 급격히 악화되어 극심한 호흡곤란으로 수개월째 앉아서 밤을 지새웠고, 합병증으로 심각한 부종까지 발생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비후성심근증 : 비후성심근증은 심장근육이 두꺼워지는 현상으로, 유전적 소인에 의해 심장근육이 과다하게 발달하는 질환이다. 이는 돌연사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비후성 심근증의 약 20%는 뇌졸중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호흡곤란과 심장활동을 저하시키는 심부전의 원인이 되며, 급사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 수술 전 : 비대해진 심장근육으로 인해 좌심실 유출로가 막힘
▲ 수술 전 : 비대해진 심장근육으로 인해 좌심실 유출로가 막힘
 
김욱성 교수는 고심에 잠겼습니다. 이미 말기의 상태였고, 삼첨판 폐쇄부전과 승모판 폐쇄부전이 동반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술만이 현재 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었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승모판 폐쇄부전 : 비후성심근증에 동반되는 경우가 많은 판막질환으로 판의 폐쇄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해 혈액이 역류하게 되고, 이 때 좌심실과 좌심방 모두 과잉의 노력을 하게 돼 점차 비대해지고 확장되는 질환
     
 *삼첨판 폐쇄부전 : 좌측 심장의 병변으로 인해 폐동맥의 압력이 높아지거나 혈류 량이 많아짐에 따라 삼첨판막륜이 확장되면서 폐쇄부전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주로 말기에 나타나며 급사의 위험이 높음
 
“환자분의 경우 고령이시고, 신장과 간 기능도 약하신데다 부종까지 심하셔서 수술 성공률이 50%에 불과합니다. 보호자께서 어머니(환자)와 상의하셔서 신중히 결정해주십시오.”
 
“이렇게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돌아가시는 걸 지켜보는 것은 자식 된 도리가 아닙니다. 하루를 사셔도 숨만 제대로 쉬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어머니의 수술을 집도해주십시오.”
 
환자의 보호자인 아들 내외는 고심 끝에 수술을 결정했고, 김욱성 교수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과 함께 수술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2016년 6월 1일 오전 7시 30분, 비대해진 심장근육을 절제하는 심근절제술과 이로 인해 늘어난 삼첨판(우심방과 우심실 사이에 있는 판막)을 줄여주는 삼첨판륜성형술이 함께 시행되었습니다.
 
"고령의 환자이다 보니 조직이 연약한 상태여서, 자칫 심실중격파열 같은 합병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부종이 심해 수술 시 찢어지거나 손상이 가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 심장외과 김욱성 교수 인터뷰 中 
 
▲수술 전 (왼쪽) / 수술 후 (오른쪽) 비대해진 근육 제거 후 좌심실 유출로가 뚫린 심장 초음파
▲수술 전 (왼쪽) / 수술 후 (오른쪽) 비대해진 근육 제거 후 좌심실 유출로가 뚫린 심장 초음파
 
그렇게 약 6시간의 시간이 흘러, 이 환자는 수술방을 나왔습니다. 곧바로 중환자실로 이동했고, 이틀 뒤부터는 눈에 띄게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극심한 호흡곤란은 물론 가슴 답답함도 사라졌고, 편하게 누워서 잘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보름 뒤, 이 79세의 할머니는 퇴원 수속을 밟았습니다.
 
수술을 집도한 김욱성 교수는 “수술 직후 증상이 호전을 보이고 있고, 인공 심장 판막치환술 없이 본인의 판막으로 지낼 수 있으며, 정상인과 같은 생활을 하시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며, 환자의 퇴원을 축하했습니다.
 
 
일반 심장질환과 증상이 비슷하지만 돌연사 위험 높은 비후성심근증
약물 치료로 호전되지 않을 땐 적극적으로 수술 고려해야 해
 
일반적으로 젊은 운동 선수들의 사망원인 중 1위로 알려져 있는 비후성심근증.
별다른 이유 없이 계단을 오르거나 빠른 속도로 이동할 때 숨이 차고, 활동 시 가슴 통증이 나타나는 것이 주 증상입니다. 하지만 이는 다른 심장질환과 증상이 비슷한데다 급사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질환입니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약물 치료를 최우선으로 시행했고,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심실중격으로 가는 혈관에 알코올을 넣고 인위적으로 심근경색을 만들어 심근 두께를 줄여 증상을 호전시키는 ‘알코올요법’을 시행해왔습니다.
 
하지만 2011년 미국심장학회에서는 비후성심근증의 수술적 치료가 알코올요법보다 치료 효과가 낫다는 표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이와 함께 삼성서울병원 역시 2013년부터 김욱성 교수를 주축으로 비후성심근증 수술을 활발히 시행해오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총 24명의 환자들이 심근절제술을 시행 받았고, 수술 후 또는 추적기간 중 사망률 제로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인공심박동기의 삽입이 필요한 경우나 심실중격파열 등의 합병증도 발생하지 않고, 모든 환자들이 수술 후 현재까지 증상의 호전을 보이며 정상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불치병이 아닌
수술로써 삶의 질을 개선하고 완치의 길을 열어줄 것
 
무엇보다 이번 환자 사례의 경우 79세의 고령이었다는 점과 심각한 합병증을 동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적 치료를 통해 상태가 호전되었고, 이는 곧 심근절제술의 안정성 및 효율성을 입증한 케이스이기에 더욱 의의가 큽니다.
 
“이 환자분의 경우 다른 병원에서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약물 조절이 안 되는 상태였고, 호흡곤란으로 인해 삶의 질이 매우 낮은 상태였죠. 하지만 수술 이후 증상이 호전되면서 삶의 질이 좋아지셨고, 별도의 인공 심장 판막치환술 없이 남은 생을 사실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질환이지만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하지만 김욱성 교수는 모든 비후성심근증 환자에게 수술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비후성심근증으로 진단되면 약물 치료가 우선 시행되는 것이 표준치료입니다. 하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두꺼워진 심장근육으로 인해 심장에서 피가 뿜어져 나가는 좌심실 유출로의 압력 차이가 30-50mmHg 일 때는 두꺼워진 심장근육을 잘라내는 심근절제술을 반드시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기에 김욱성 교수는 의료진과 환자들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김욱성교수
김욱성 교수
 
우리 병원 같은 경우 비후성심근증 클리닉을 개설해 순환기내과, 심장외과, 진담검사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각 과의 의료진이 환자 케이스를 리뷰하고 치료 계획을 세우면서 수술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 비후성심근증 수술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상황입니다. 아직까지는 수술 해봐야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저희의 과제입니다.”
 
그렇기에 김욱성 교수는 학회 발표 등을 통해 비후성심근증에 있어 수술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평생 안고 가야 할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비후성심근증 환자들에게 삶의 질을 개선하고 완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희망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술했던 환자 중 현재 다른 병원에서 방사선 기사로 근무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비후성 심근증 때문에 움직이는 것도 힘들고, 정상적인 근무와 일상생활을 힘들어 했는데, 수술 후 수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삶의 질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진 셈이죠. 이처럼 비후성심근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고령의 환자가 경과 관찰을 위해 외래를 방문했습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해 아직 다리 근력이 부족하지만, 동네 한 바퀴 산책할 정도로 체력을 회복하고 있다며, “요즘은 내가 나비가 된 기분이다.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다.” 며 김욱성 교수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비후성심근증 환자들에게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할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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