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과 치료를 포기했던 희귀 부정맥, 마침내 절망에서 희망으로. / 원더링 페이스메이커 / 부정맥 명의 / 박경민 교수 / 삼성서울병원 심장뇌혈관병

 
 
 

심정지! 심정지!
심폐 소생술과 제왕절개를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미국 뉴저지의 한 병원,
구토와 설사, 극심한 피곤으로 병원을 찾은 임신 9개월차의 산모의 심장이 멈췄습니다.
병원에 올 당시 220*회까지 치솟던 산모의 맥박을 잡기 위해 주입한 약물로 인한 쇼크였습니다.
 
*일반인의 평상시 정상 맥박 : 60~100회
 
곧바로 심폐소생술과 응급제왕절개 수술이 시작되었고, 9개월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아기와 심정지 상태였던 산모 모두 무사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정확한 병명과 원인을 잘 모르겠습니다.”
 
산모의 맥박이 좀처럼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의료진 역시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 매우 곤혹스러워 했습니다. 하루는 패혈증, 하루는 심부전과 부정맥, 하루는 부신. 하루가 멀다 하고 뒤바뀌는 진단명으로 두 번의 시술과 일곱 종류의 약을 먹었지만 차도 없이 어느새 4억원의 치료비만 쌓였습니다.
 
‘더 이상 안되겠다.’
아직 제대로 몸조리조차 하지 못한 산모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고향인 한국 행을 결심했습니다.
 
“부신이 아닙니다. 다만 심장 쪽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순환기내과로 연계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심장뇌혈관병원 심장센터 순환기내과 박경민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입국한지 약 두 달이 지난 10월 24일이 되어서야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맥박을 뛰게 하는 페이스메이커(심박조율기)가 세 군데에 존재했던
희귀 부정맥, 원더링 페이스메이커(Wandering pacemaker)

 
‘이상한데?’
 
자기 맥박이 부적절하게 빨라지는 질환으로 판단해 동발결절 주위를 고주파 전극도자 절제술로 기능을 약화시키려고 했던 박경민 교수는 이상신호를 감지했습니다.
 
맥박 수의 변화에 따라 심전도의 P파 모양이 계속 바뀝니다. 3차원 지도화 장비 (3-Dimensional Mapping System) 를 이용하여 그 지점들을 찾아내야겠습니다.”
 
이내 박경민 교수는 카테타를 통해 부정맥이 생기는 지점을 파악해 3차원 영상으로 지도를 그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맥박 수에 따라 심박조율을 하는 위치가 바뀌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심장에서 전기자극을 형성해 맥박을 뛰게 하는 동방결절. 동방결절은 주기적으로 전기적 신호를 보내 심장의 수축 주기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심장 내 다른 부위의 세포들보다 전기적 신호를 가장 빠르게 생성하여 심장의 박동을 조율하는 중추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정상 맥박은 60~70회 정도로 나타나고, 격렬한 운동을 했을 경우 130회 이상으로 올라가 숨이 차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통상 한 군데에서 전기자극 신호를 보내는 것과 달리 이 환자의 경우는 총 세 곳에서 전기 자극을 보내면서 맥박수가 갑자기 분당 70회에서 150회까지 변하였던 것입니다.  


 
 
 
정상 맥박의 범주에 들어가는 60~80회까지는 첫 번째 페이스 메이커에서, 80회가 넘어가면 두 번째 페이스 메이커에서, 110회 이상 넘어가면 마지막 페이스 메이커에서 조율을 하는 특이한 구조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평소 맥박이 100회(*일반인 평균 정상 맥박 70~80회)를 넘는 이 환자는 임신 후 스트레스로 인해 심박동이 140~150회를 넘었고, 그로 인해 마지막 페이스 메이커가 반복적으로 작동하여 고통을 호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문 의료진에게도 생소한 희귀 질환이었지만 원더링 페이스메이커라는 부정맥임을 진단해낸 박경민 교수는 또 하나의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세 군데에 분포하고 있는 심박조율 세포 중 제거 범위를 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일반인들처럼 하나의 심박조율기를 남겨 두고 다른 두 개를 제거하는 것도 고려해봤지만, 문제는 정상 기능을 해야 할 정상 위치의 심박조율기의 기능이 매우 약하다는 겁니다. 오히려 아래로 갈수록 조율 기능이 강했죠. 그래서 일단 140회 이상의 맥박을 만들어내는 맨 마지막 페이스 메이커를 제거해 환자의 고통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통상 한 개의 페이스메이커로만 작동하는 구조와는 달리 한 개의 페이스메이커만 남겨놓기에는 기능 자체가 좋은 편이 아니었고, 이에 따라 80회에서 110회의 맥박을 만들어내는 두 번째 페이스메이커는 남기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고주파 전극도자술을 통해 140회 이상의 맥박을 만들어내는 페이스메이커를 제거하는 시술을 시행했습니다.
 

 
 
 
시술을 마치고 나온 박경민 교수는 밝은 표정으로 환자의 상태를 전했습니다.
 
 
 

진단부터 치료까지 전 과정이 매우 어려웠던 희귀 부정맥,
마침내 절망에서 희망으로

 
 

 
 
 
퇴원하기 하루 전날 병실에서 만난 산모는 환한 미소와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번 다시 아기를 가져서도 안 된다고 했었고, 평생 약을 먹으면서 살아야 하는 불치병이라고 했었는데, 이렇게 한국에 들어와서 시술 받고 완치했다는게 믿겨지지가 않아요. 약도 먹지 않아도 되고, 임신도 가능하고, 이제 선생님이 운동만 조금씩 늘려가면서 심장 기능을 건강하게 유지하라고 했으니 그렇게 할 계획입니다.”
 
이제 갓 백일이 지난 아기의 사진을 보며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산모는 말했습니다. 새 생명의 탄생과 함께 또 다른 삶을 다시 시작하는 이 가족이 앞으로도 늘 건강하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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