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암병원 외과중환자실 유현민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나는 특이할 정도로 누군가가 내 ’이름’ 을 불러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은 없지만 다른 어떠한 호칭도 ‘이름’이 가져다 주는 그 따뜻한 느낌과는 견줄 수 없다… 랄까?
 
나는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간호사로 일하기 전 학생의 신분으로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 때 가장 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간호사 간의 인수인계였다.
“오늘 1266호는 CT다녀왔고, 1267호는 혈당 조절에 문제가 있어서 인슐린 용량을 올렸어.”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의 인수인계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그 때 나는 절대 ‘이렇게 환자를 호실로 부르는 간호사가 되지 말아야지’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병원을 들어오기 전 면접을 볼 때도
“실습하면서 본 간호사의 행동 중 이것은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나?”
라는 질문에 위와 같은 상황을 말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내 경험을 말했었다.
하지만 간호사로 생활하면서 정신 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입사 전 줄곧 간직해왔던 이런 소중한 다짐의 색이 바래졌던 것 같다.
 
우리 중환자실은 13개의 BED가 있고 BED마다 고유의 번호가 부착되어 있다. 의사소통이 편하고 빨리 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의료진 간에 의사소통을BED번호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건의 발단은 거기에 있었다.
 
입사한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신규간호사 때의 일이다. 나는 여느 날과 같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고 안타깝게도 담당하는 환자의 상태가 위중했다. 그로 인해 주치의와 계속 환자 앞에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고, 나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선생님, 9번 환자 혈압 떨어져요. 9번 환자 헤모글로빈 6입니다. 여기 9번 환자 ABGA 결과에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중환자실 간호사는 대부분 한 명당 2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대게 그 2명은 붙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사이는 고작해야 2m 정도. 속삭이는 말도 들릴 수 있는 거리다. 그 ‘9번 환자’는 상태가 조금 안정되었고, 바빠서 미처 많이 신경 쓰지 못했던 10번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중환자실에도 의식이 명확한 환자는 많이 있다. 내 담당이었던 10번 환자 분도 그러했다. 옆에서 많이 무서웠을 환자 분을 위로하며 괜찮으시냐고 여쭈었다. 환자 분은 다행히 괜찮다고 말씀하셨고 조금 진정하신 뒤 천천히 입을 여셨다.
 
“간호사님, 성함은 어떻게 되시죠? 저는 OOO입니다.” 곧바로 내 이름을 말하고 무슨 일이시냐고 여쭤보았다.
“유현민 간호사님, 이것이 사람 간에 관계의 시작입니다.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부터 시작되죠.” 그리곤 뒤에 이어
“죄수도 아니고, 환자를 번호로 부르는 것을 지켜보는 건 즐거운 경험이 아닌 것 같네요.” 라고 말하셨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눈 앞이 까맣게 변해서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혹 민망해할까 웃으면서 말씀해주시긴 했지만,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게 ‘의미 있는 사람’ 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선언문 낭독과 같다. 상대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자주 불러주었을 때 그 사람은 하나의 의미로 다가오며, 내 입장에서 그 사람은 의미 있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유명한 시의 한 구절에도 있지 않은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의 “꽃” 중에서…>
 
당시에는 얼굴이 새빨개져 말도 더듬고 많이 당황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간호사로서의 나를 한 단계 성장시켜 준 경험이었다. 물론 아직도 가끔 실수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이 경험이 생각나면서 다시금 이름을 불러드리곤 한다. 앞으로도 환자분, 할머니, 할아버지, 9번 환자가 아니라 OOO님이라고 부르도록 노력할 것이다.
“OOO님, 안녕하세요. 오늘 OOO님을 담당하게 된 유현민 간호사입니다.”
 
나는 특이할 정도로 누군가의 ’이름’ 을 불러주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어떠한 호칭도 ‘이름’이 가져다 주는 그 따뜻한 느낌과는 견줄 수 없다… 랄까?

10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