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어머니

18동 병동 김지현

우리들의 어머니


올 봄은 유난히 더디 오는 것 같다. 따스한 햇살에 두 눈을 감고 아직 선선한 기운이 감도는 봄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어느새 피곤함은 사라지고 이제 갓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한 목련과 살구꽃 내음이 바람결에 타고 와 내 지난 기억들을 일깨운다.
처음에 그분은 여느 환자의 보호자처럼 그저 병상에 누워있는 아들을 간호하는 어머니 중의 한분이셨다.20년 넘게 임상에 있다 보니 환자만큼이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보호자들이 있다. 그 중에는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을 간호하는 배우자도 있고, 부모님을 간호하는 자식들도 있으며, 시부모님을 간호하는 며느리도 있지만, 본인의 몸은 아랑곳 없이 가장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모습은 뭐니 뭐니 해도 자식을 간호하는 어머님들이다.
그 분도 그런 어머님중의 한 분 이셨다. 서울에 있는 가장 큰 병원에서 잘 치료받고 낼 퇴원할거라는 아들과의 전화 통화를 마지막으로, 지금은 간간히, 그것도 무의식적으로 눈을 껌뻑여 주는 것으로 아직 이 세상과의 끈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아들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은 채 3년째 병상을 지키시는 어머님이시다.
“ 우리 아빤 내가 올 때마다 잠만 자~~ 빨리 일어나~~” 라고 병원으로 아빠 면회를 온 철없는 5살배기 손자의 말에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파 며느리를 대신해 한사코 본인이 병간호를 자처했던 어머님..혹시 다른 사람의 손을 타면 아들이 불편할까 걱정되서 일년 365일 거의 아들의 병상 곁을 떠나 본적인 없는 어머님..
의식조차 없이 누워있는 아들이 혹여나 털끝 만큼이라도 불편할까 타고난 지혜로움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서간호용품들을 손수 제작해서 대어주기도 하시고, 미처 우리들도 생각하지 못한 간호의 팁을 알려주시는 등 때론 어머님은 간호사 이상이셨다.
다인실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키신 지 오래라 그 방에 입원하시는 환자, 보호자에게도 힘든 입원생활에 대한 노하우와 병실환경정리 등을 손수 모범을 보이며 알려주시기도 하셨고, 하물며 면회객 관리까지 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시기도 하셨다.
그렇게 아드님 곁을 지키시느라 어느 땐 끼니도 거르신다는 것을 알았을 때그 모습이 애처로와 어느 날 교육실에 있는 떡과 음료수를 가져다 드시도록 했더니 “내가 선생님을 대접해야 하는데..” 하며 끝내 눈시울을 붉히시던 어머님..
끝도 없는 아드님 간병에 급기야는 병이 나서 꼼짝도 못하고 보호자 침대에 누워 계시는 어머님께 주치의와 상의 후 링겔병을 달아 드렸을 때도 우리 어머님은 감사함에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하지만 그 분은 이미 우리 간호사들 모두의 어머님이셨고, 그랬기에 우리들 모두는 아드님이 어머님의 정성에 감복해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아니 꼭 그런 기적이 일어났음 좋겠다는 바램으로 간호를 해 왔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해 연말, 병상에서 너무도 애쓰시는 어머님께 작은 선물을 해 드리고 싶은 맘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영양제 한 통을 선물했더니 어찌나 아끼시고 소중히 여기시며 복용하시던지.. 오히려 내가 감사한 맘이 들 정도였다.개인적인 사유로 잠시 병원을 떠나 있는 내게 두 세 달에 한번 꼴로 꼭 안부전화를 해주시던 어머님..
그 분은 어린 시절부터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어머님 상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런 어머님이 지금은 몹시 아프시다. 얼마 전 우리 병원에서 췌장암 선고를 받으신 것이다. 세상에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째 이런일이.. 불행은 이렇게 겹쳐서 오는 것인지.. 우리 어머님은 병상에 있는 아들을 놔두고는 맘대로 아프실 수 도 없는 분이신데..
늘 아드님의 병상 곁을 지키시며 내게 감동을 주셨던 우리 어머님..
그 어머님께 이번에도 난 감동을 기대해본다.
췌장암을 잘 이기시고 어머님의 익숙한 손길을 기다리는 아드님의 병상에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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