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7-6 이슈리포트] 학교 밖 청소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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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7-09-14 |
내용
학교 밖 청소년
메디칼업저버 게재 <학교 밖 청소년 불편한 낙인 '비행청소년'> 20170605 https://goo.gl/si1JkY
#1
초등학교 6학년 때 심하게 따돌림을 받았던 A군은 중3때 초등학교 친구가 같은 반이 되자 따돌림을 받았던 사실이 드러날까 걱정이 됐다. 그 친구와 다른 아이들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숨이 막히고 교실에 있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퇴한 A군은 학교를 벗어나자 가슴 뛰는 증상이 사라지고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다음날부터 A군의 등교 거부가 시작됐다. 부모가 열심히 설득했지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학교에 억지로 보내면 집을 나가겠다” “학교 가는 대신 검정고시를 보겠다”며 완강히 등교를 거부했다. A의 부모는 결국 자퇴를 결정했다. 자퇴한 A군은 며칠간은 편안해 보였으나, 이내 “밖에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학교 안 가는 것을 이상하게 본다”며 검정고시 학원 수업시간을 저녁으로 바꿨다. 또 학생들이 하교할 시간이 지나야 집 밖으로 나갔고, 낮 시간에는 집에서 인터넷 게임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2
고등학교 1학년인 B군은 학교생활을 어려워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등교 시간이 빨라졌는데, 중학교 때와 달리 선도부가 지각생들을 교문에 세우고 벌점을 줬다. B는 지각벌점 뿐 아니라 복장 불량으로 추가로 벌점을 받았다. 3월 입학식 이후 거의 매일 지각을 했고, 복장에 대해 반복적으로 지적을 받아도 변화가 없었다. 학교를 마치면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새벽 1시가 지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수면 시간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B군은 수업 시간에 주로 잠을 잤고, 수업에 대한 흥미나 관심이 점점 사라졌다. 교내에서 흡연하다 선생님에게 수차례 적발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B군의 행동이 도저히 변하지 않는다며 난감해했다. 결국 B군은 학교를 다니기 싫다며 자퇴했다.
#3
중학교 때까지 중소도시에서 살던 C양은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대도시로 이사했다. 지역에서 촉망받는 수재로 알려졌던 C양은 고등학교 영어수업 시간에 같은 반 친구들이 원어민처럼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았다. 영어 교과서를 예·복습하며 힘들게 공부하는 자신과 달리, 별다른 노력 없이도 영어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 친구들을 보며 주눅이 들었다. 학업에 자신이 없어진데다 다른 학생들과 문화적 차이도 크다고 느낀 C양은 급우들과도 멀어지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또 전학을 강요한 부모에 대한 원망이 커졌다. 결국 2학기가 되자 C양은 “도저히 학교를 못 다니겠다”면서도 “이전에 다니던 지역의 고등학교는 창피해서 돌아갈 수 없다”며 자퇴를 선택했다.
학교 밖 청소년 39만명, 왜 학업을 중단하나
이처럼 많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이유로 학교를 떠나 ‘학교 밖 청소년’이 된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5년 학업중단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전국 초·중·고교 재학생 608만8800명 중 4만7000여명(0.77%)이 학교를 떠났다. 이 중 53%는 학업이나 대인관계, 학교 규칙 등에 대한 부적응을 이유로 학교생활을 중단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학교 밖 청소년은 39만명에 달하는데, 이는 전체 재적학생의 6%에 이르는 수치다. 적지 않은 숫자임에도 학교를 벗어난 청소년들은 제도권 내에 있는 청소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과 지원을 받고 있다.
흔히 학교 밖 청소년이라 하면 ‘비행’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2016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학업중단 청소년의 6명 중 1명꼴인 17% 가량이 학교 중단 3년 이후까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비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학교 밖 청소년들이 비행과 무관한 상태에 있는 만큼 다양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학교 밖 청소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왜 학업 중단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일반 청소년의 경우 ‘원하는 것을 배우려고’, ‘공부하기 싫어서’, ‘특기를 살리려고’ 등의 이유를 들었다. 비행 청소년은 ‘일어나기 힘들어서’, ‘공부하기 싫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서’ 등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분류하자면 우선 개인적인 차원으로는 ▲학업성취능력·동기 부족으로 인한 학업 부적응 ▲우울·무력감·불안 등 정서적 문제 ▲가정의 경제적 문제나 가족 해체 등 가정적 요인 등이 있다. 또 ▲학교 조직·분위기나 교육과정·규율 등에 대한 부적응 ▲학교의 교육적 기능 약화 ▲지각·조퇴·무단결석 및 불성실한 수업태도 등의 요인도 학업 중단에 영향을 미친다. 이밖에도 교우관계나 지역사회 요인이 학교 중단 원인이 되기도 한다.
떠밀린 아이들…가족·사회에 반감도
이처럼 학교 중단의 이유는 매우 다양하며, 때로는 여러 요인이 함께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중단을 선택한 학생 자신에게 전적으로 원인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이처럼 경직되고 부정적인 시선들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상황에 떠밀려 학교를 중단한 아이들은 가족과 사회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경우도 많다.
D양은 또래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다가 학교 부적응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D양의 어머니는 집에 친척들이 찾아올 때마다 방안에 들어가 있도록 하거나 외출을 종용한다. 손주들에게 관심이 많은 D양의 조부모는 TV 뉴스 등에서 학교를 자퇴한 중고생 관련 기사를 보면 혀를 차면서 “한심하다”고 말하곤 했다. D양과 부모는 자퇴한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조부모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고, 조부모가 수시로 방문할 때마다 온가족이 혼비백산이 된다. D양은 “나는 피해자인데 마치 죄인처럼 취급받는 것 같아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호소한다.
학교를 중단한 청소년들이 대안적 방안을 찾는 데 이 같은 부정적인 시선은 큰 걸림돌이 된다. 공교육 제도권을 벗어나도 교육을 지속하길 원하는 경우 대안학교에 진학하거나 개별적으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하지만 청소년 개인마다 학교 중단 이유가 다른 상황에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대안학교 기관을 찾기 어렵다. 혹 찾게 되더라도 거리나 비용 등의 문제로 다니기 어려운 경우도 많을뿐더러, 제도권 학교를 중단했다는 주변의 시선에 주눅이 들기도 한다. 검정고시 학원을 가도 주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굳이 저녁 시간 직장인반을 찾는 청소년들도 있다.
학교 중단 전·후 제도적 지원 필요해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우선 학교나 가족이 도울 수 있는 요인을 찾아 학교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지해줘야 한다. 중학교 2학년 E양은 새 학기에 극심한 불안 증가로 등교를 거부하고 잦은 결석과 지각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유연한 근태를 허용해, 5월 말부터는 학교생활이 가능해졌다. 특히 2014년부터 시행된 ‘학업중단숙려제도’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학업 중단 징후를 보이거나 의사를 밝힌 고등학생과 학부모가 Wee센터(Wee클래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의 외부 전문 상담을 받으며 2주 이상 숙려 기간을 갖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학생의 심리사회적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학교 중단이 더 도움이 된다면 이를 인정해야 한다. 학교 중단을 결정할 때 가장 두렵고 힘든 사람은 바로 당사자인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자퇴를 결정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또래와 다른 길을 가야하고 누구나 일상이라고 믿고 있는 제도에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능가하는 고통 때문에 학교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런 청소년들에게 ‘나약하다’거나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난은 두려움과 불안을 증폭시킬 뿐이다.
더불어 학교 밖 청소년들이 학교 중단 이후의 생활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난 2015년 ‘학교 밖 청소년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시행되면서 정부가 본격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나섰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전국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꿈드림)’ 202곳에서 학교 중단 청소년들이 상담·교육·직업체험·자립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센터에 연계된 청소년은 한해 3만6000여명에 불과하다. 학교 밖 청소년의 약 10%만 도움을 받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 중단 청소년들은 스스로 발품을 팔고 정보를 찾아 결정해야 한다. 자녀에게 적절한 대안과 정보를 주는 부모도 있지만, 많은 경우 우왕좌왕하면서 초반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학교 중단을 선택한 청소년에게 학교 중단 이후 생활에 대한 길라잡이 정보 제공이 필요한 이유다.
학교 중단 청소년들에게 지지와 기회를
중·고등학교 시기에 또래 친구를 사귀고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학교를 다니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분명하다. 시간이 지난 뒤 학교 중단을 후회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하지만 평균적인 기준에 맞추기 어려운 청소년들이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학교 부적응이 인생 부적응은 아니다. 학교를 중단한 청소년들이 지속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발달하기 위해서는 학교중단이 일상적이지 않지만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틀린 길이 아니라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것이라는 가족과 사회의 수용적인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가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지지적인 시선과 함께 교육 및 사회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학교 부적응이나 학교 중단은 긴 인생에서 잠깐 힘들었으나 가치 있는 경험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사이트
-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 www.kdream.or.kr
- 학업중단 숙려제: https://www.kyci.or.kr/fileup/lib_pdf/2013-15.pdf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정유숙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