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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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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3 이슈리포트] 가짜뉴스의 유혹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9-14

내용

가짜 뉴스의 유혹

 

  2016년 12월 미국 워싱턴의 한 피자 가게에 한 남성이 총을 난사했다. 그는 그 가게가 ‘클린턴의 아동 성매매 근거지’라는 가짜뉴스를 믿고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류 언론사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했지만, 그는 가짜뉴스를 계속 믿었다.

  전 세계가 ‘가짜뉴스(Fake News)’로 홍역을 앓고 있다. 사실 가짜뉴스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있었다. 확인할 수 없는 풍문과 목격담들, 소위 ‘찌라시’라고 불리는 그럴듯한 증권가 정보지나 음모론은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방대한 정보가 떠도는 인터넷 공간에서 태어난 요즘의 가짜뉴스는 SNS를 통해 신속하게 복사되고 전파된다. 게다가 최근에는 진짜 언론 보도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어 구별하기 더 어려워졌다.

  이처럼 위험한 가짜뉴스에 사람들이 빠져드는 이유는 무얼까? 바로 ‘뇌’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주목을 끄는 것에 반응한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이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진실은 따분하고 뻔하며 가끔은 복잡해서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반면 가짜뉴스는 자극적이고 강렬하며 명쾌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음모론과 연예인 사생활이 인기를 끌고, 포털사이트에서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의 클릭수가 높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극단적인 주장을 가진 사람일수록 가짜뉴스에 취약하다. 뇌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사람은 정치에 관한 기사를 볼 때 객관적 사실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보다 주관적 취향을 처리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는 단순하고 명쾌한 흑백 논리를 선호한다. 이해하기 쉽고 순수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절대성과 순수성에 집착할수록 내 의견에 맞는 뉴스를 믿고, 내 의견에 맞지 않는 뉴스는 믿지 않게 된다.

  심리적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생각과 다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자신의 신념과 다른 뉴스를 보고 태도를 바꾸는 것은 불안하고, 화가 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 뉴스는 믿고 싶지 않다. ‘내 주장은 정당하고 내 신념이 옳다’고 확인해주는 뉴스를 갈망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SNS를 통해 내가 원하는 뉴스를 접하고 “그럴 줄 알았다니까!”라고 외치는 순간, 가짜뉴스는 여과 없이 뇌에 각인된다. 자기편을 지지하는 뉴스라면 출처가 어디든 믿고 싶어지며, 그 가짜뉴스를 같은 편끼리 공유하고 ‘역시 우리가 옳았다’며 다시 서로를 지지한다. 가짜뉴스는 이렇게 같은 편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간다.

  인간의 뇌 역시 자기 집단의 주장과 반대 집단의 주장을 바라볼 때 달라진다. 한 연구에서 이스라엘 주민과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각각 기사 내용을 보여주고,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주민이 팔레스타인에 유리한 주장을 볼 때, 반대로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스라엘에 유리한 주장을 볼 때 적개심과 상관관계가 있는 뇌 영역이 활성화됐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해도 결국 감정적으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군사독재시기를 거치면서 공식 보도보다 소문이 더 정확했던 역사를 경험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뉴스의 출처를 궁금해 하지 않게 된다. 가짜뉴스가 퍼지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짜뉴스와 진짜 뉴스가 계속 섞여 전해지다 보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된다. 피자가게에 총기를 난사한 청년처럼, 진실과 거짓이 혼란에 빠지면 인간은 결국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가짜뉴스에 속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연구 결과 가짜뉴스에 대한 ‘심리적 백신’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짜뉴스와 진짜 뉴스가 섞인 것을 보고 구별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은 이는, 가짜뉴스를 접한 적 없는 이들보다 가짜뉴스를 더 잘 구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주장에만 빠져 있으면 진실을 알려주고 심리적 백신을 놓아도 자기 구미에 맞는 뉴스만 믿으려고 할 것이다. 멍청하고 한심한 사람들이 가짜뉴스에 속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관적 의견을 가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내 주장에 맞는 가짜뉴스에 약하다. 어디선가 내 생각과 잘 들어맞는 뉴스를 만난다면 오히려 의심해야 한다. 스스로가 가짜뉴스의 제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가짜뉴스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다.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김석주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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