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6-20 이슈리포트] 노인정신건강과 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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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6-12-28 |
내용
노인정신건강과 운전
지난 11월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한 차량이 갑자기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은 채 차로를 바꿔 끼어들었다. 그 바람에 뒤따르던 관광버스가 전복돼 승객 4명이 숨지고 22명이 다쳤다. 끼어든 차량 운전자는 76세 고령운전자로, 경찰 조사에서 “나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월에는 경남 창원에서 71세 고령운전자가 몰던 통근버스가 반대 차로로 넘어가 신호대기 중이던 승용차 3대와 부딪치고 상가 건물로 돌진하기도 했다.
노인 운전자 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5년간 65세 이상 노인 운전자 교통사고는 69.6% 급등했다. 최근 10년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27% 줄어들었지만, 같은 기간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는 4.8% 증가했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나 판단력, 집중력 등 인지기능이 떨어져 운전에 지장을 주는데, 고령화로 인해 노인운전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65세 이후 5세씩 늘어날 때마다, 인지기능이 저하된 노인 비율이 약 10%씩 증가한다. 인지기능이 저하된 65세 노인은 6~7명 중 한 명 가량(15.5%)인데, 85세 이상에서는 3명 중 2명 꼴인 67.1%에 달한다. 이처럼 나이가 들면서 인지기능이 낮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보처리 속도가 떨어지고, 기억력·지각·상황판단 능력도 저하된다. 중요한 정보에 집중하는 ‘선택적 주의력’도 감소하게 된다.
노인성 질환도 인지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치매나 경도인지기능장애, 우울증, 알코올 중독, 불면증, 충동조절장애 등을 앓는 경우다. 치매를 앓는 노인은 반응속도와 판단력 등에 문제가 생긴다. 또 스스로 운전이 가능한지에 대한 인식도 떨어지게 된다. 우울증도 치매 못지않게 영향을 미친다. 우울증이 있는 노인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해 운전하다가 졸 수 있고, 집중력에도 지장을 받는다. 반응속도가 느려지고 충동조절이 안될 때 운전을 한다면 사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지기능에 영향을 주는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인의 운전 능력 여부는 개인 차이도 크고, 동반된 질환이나 약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노인 운전자의 운전을 일괄적으로 막거나 제한하는 것보다 노인들이 좀 더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교육해야 한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이런 관점에서 고령운전자를 관리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은 70세 이상 운전자는 의무적으로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며, 75세 이상은 교육 전 인지기능검사도 받는다.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는 노인에게 식당 할인 이용권을 주는 정책까지 실시하고 있다. 영국도 70세부터 3년마다 면허를 갱신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 갱신주기를 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갱신할 때마다 교통안전교육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자동차 운전은 노인들의 활동 반경을 넓혀 삶의 질을 높여주고, 사회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노인 운전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무엇보다도 노인 스스로 운전 능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운전하는 것이 전보다 더 어렵지는 않은지 수시로 확인하자. 어려움이 있다면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를 찾아 인지기능이나 동반 질환이 운전에 지장을 주는지를 확인하고 대비해야 한다. 노인들은 질환 때문에 많은 약물을 복용하곤 하는데, 수면제나 안정제를 복용한 뒤에는 운전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야간 운전이나 장거리 운전, 고속 주행을 하는 중에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도 더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한다. 나이든 부모나 지인이 전보다 주차하기 힘들어하고 경미한 사고를 자주 낸다면 특히 주의 깊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의료진은 환자의 인지기능 수준이 운전에 적절한 정도인지 알려주고 운전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약물을 처방할 때는 본인과 가족에게 꼭 고지해서, 노인 운전자와 가족들이 주의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