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6-16 이슈리포트] 지진공포증 극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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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6-10-18 |
내용
지진공포증 극복
동아일보 A32면 게재 : <지진트라우마 치유할 시스템 절실> 20160927 https://goo.gl/I9J17k
지난 12일 경주에서 규모 5.8에 달하는 지진이 발생했다. 그 뒤로도 크고 작은 여진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서도 강력한 지진이 일어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실감했다는 이들이 많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지질학적으로 안정된 곳이리라 여겼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진에 대한 두려움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일반적으로 지진으로 사망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심장질환이나 자살로 죽을 위험에 비하면 무시할 수준이며,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훨씬 낮다. 하지만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지진공포증을 호소하는 것일까. 바로 ‘나도 지진을 겪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태풍이나 지진해일(쓰나미)과는 달리 지진은 ‘보이지 않는 위협’이다. 따라서 다른 재해보다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지진이 일어난 적 없던 곳에서는 지진 공포가 거의 없지만, 일단 경험하면 그 두려움이 지속적으로 삶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당시 뉴욕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할수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생이 높았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핵발전소 폭발, 쓰나미로 인한 재난을 생생히 목도했다. 경주 지진 사태에서도 강진을 직접 겪은 주민 뿐 아니라, 가까운 대구나 부산 등의 지역 주민도 불안을 느낀다. 나아가 TV 등 영상매체를 통해 지진 장면을 지켜본 국민들도 불안과 공포를 경험한다.
이들은 수시로 지면이 떨리거나 몸이 흔들리는 느낌을 겪으며 대지진의 전조는 아닌지 두려워한다. 건물 잔해에 사람이 깔려있는 장면 등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벽장이나 천장의 물체가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한다. 언론 속 지진 정보에 집중하며 긴장하고 두려워한다. 소리나 감각에 예민해져 차가 지나가는 작은 소음이나 흔들림에도 놀라고 불안해한다. 특히 걱정이 많거나 사소한 자극에도 잘 놀라는 성격인 이들에게 이 같은 불안감이 더 잘 발생하며, 기존에 협소-광장공포증이나 우울증 등이 있는 사람은 지진공포증으로 발전하기 쉽다.
지진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지진 발생 시 대처 요령을 미리 익혀두는 것이 좋다. 막연한 불안감이 가득한 마음을 비우고, 구체적인 행동 지침으로 다시 채우는 것이다. 나와 가족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를 알면 자기통제감을 높일 수 있다. 불안이나 불면이 생겼다면 지진 관련 정보에 노출되는 것을 피한다. 공포증은 위험을 계속 곱씹는 과정에서 악화되기 마련이다. 편안한 장면을 상상하며 복식호흡, 요가 등 이완 요법을 훈련하면 스트레스 반응을 낮춰 공포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불안•불면 등의 증세가 심하다면 의료기관을 방문해 두려움과 공포를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단기간 약물 치료도 고통에서 조기에 벗어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정부는 이처럼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신적 트라우마를 어떻게 관리할지 대책을 세우고, 체계적인 심리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진 경보를 제때 잘 발송하는 것이 중요하듯, 국민들이 재난으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정신건강경보도 조기에 체계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홍진표 소장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