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6-8 이슈리포트] 정신질환자 가족의 아픔, 가족에게 오명씌우기(Stigma) | ||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6-07-04 |
내용
정신질환자 가족의 아픔, 가족에게 오명씌우기
가족의 아픔을 호소하는 사례 (미국)
(1)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놀릴까봐 두렵다. 남편이 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누군가가 아이에게 직접 이를 폭로한다면 우리 가정은 완전히 망가질 것이다. 나는 완전히 테러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2) 남편의 입원사실을 숨겨야 한다. 두 명의 친구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한 친구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어 남편의 입원에 대해 잘 이해할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친구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다. 나는 두 친구 모두가 나에게 연락을 취할 수 없도록 이사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전화도 끊어버렸다.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이 겪는 경제적,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는 직접 겪어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특히 만성질환자 가족의 경우,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앞에 홀로 선 외롭고 고통스러운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정신질환자의 부모나 배우자는 물론 형제자매까지도 힘겨운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환자를 돌보는 일만 힘든 게 아니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자신의 자녀나 배우자의 질환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릴까봐 두려워한다. 때때로 이를 알게 된 동료들로부터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래서 무조건 사실을 숨기고 싶다. 환자의 증상이 심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발현되는 경우 가족이 느끼는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정신질환자 가족들이 겪는 이와 같은 정신적 고통은 주변 사람들에 의한 ‘오명씌우기(stigma)’로부터 비롯된다.
가장 영향력있는 미국 사회학자 중 한 사람인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에 따르면 ‘오명씌우기’란 사회가 심히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하는 속성, 또는 그런 속성을 가진 사람이 사회적으로 거부당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불명예스럽다고 여겨지는 속성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으로 한 사람(집단)의 정상적인 정체성이 망가지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검은 피부, 신체 비만, 남루한 옷으로 구분되는 사람들에 대해 열등한 인종, 게으른 사람, 가난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씌우곤 한다. 사람들은 처음 이런 속성에 대한 고정관념(stereotype)을 형성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를 공유하면서 부정적 정서와 평가를 낳는 편견(prejudice)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편견은 차별적 행동(discrimination)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정신질환자나 그 가족은 차별적인(편견을 가진) 고용주나 집주인 때문에 취업이나 주거지 선택에 제한을 받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오명씌우기는 해당 속성을 가진 당사자에게 국한되며, 가족에 대한 비난은 미미하다. 그러나 정신질환자의 경우는 크게 다르다. 정신질환자 가족은 흔히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했다는 오명을 쓰곤 한다. 의학적으로는 잘못된 양육으로 정신질환이 발생한다는 주장이 이미 오래 전에 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아직도 부모 탓을 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거나 또는 제 때 투약을 하도록 돌보지(관리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로 인해 가족들은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때로는 직접적인 비난을 겪기도 한다. 그러면 가족들은 자연히 이웃이나 친구들과의 접촉을 회피하거나 비밀을 숨기기 위해 멀리 이사를 가는 등 과도한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하기 쉽다. 이처럼 정신질환자 가족은 오명씌우기(family stigma)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게 되며, 이는 가족의 돌봄 기능을 약화시켜 결국 환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신질환자 가족에 대한 오명씌우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많은 가족들은 가족에 대한 수치를 회피하기 위해 정신질환자와의 관계를 숨겨야한다고 믿는다. 또한 친척이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거나 멀어지게 된다고 말한다. 일부는 다른 사람들이 때때로 자신을 기피한다고 응답한다. 특히 정신질환자 및 가족에 대한 오명씌우기는 환자의 위험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핵심 요인으로서 환자가 젊은 남자(being young and male)일 경우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가족의 특성과 관련된 오명씌우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신질환자의 부모보다는 배우자가, 정신질환자와 따로 사는 가족보다는 동거하고 있는 가족일수록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기피 경험이 훨씬 많다. 배우자의 경우 환자와 사회적 관계망이 많이 겹치기 때문에, 즉, 환자와 배우자를 함께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오명씌우기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환자와 동거하는 가족의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환자의 존재가 쉽게 노출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환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오명씌우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가족의 교육수준 역시 오명씌우기 피해 경험과 관련이 있다. 흔히 교육수준이 높은 가족일수록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관용적 태도, 즉, 가족의 정신질환을 주변에 숨기거나 수치심이나 두려움을 느낄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이와 다르다. 아마도 가족의 정신질환이 밖에 알려지게 되면 자신의 지위나 명예를 잃게 될까봐 두려워서, 또는 본인도 가족의 정신질환과 관련된 유전적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에서 의심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정신질환이나 치료기관의 유형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우울증은 ‘기분이 우울하다/울적하다’는 일상적인 말에서 비롯된 명명(labeling)으로 일반인들이 두려움없이 받아들이는 편이나, 정신분열증은 매우 부정적인 인상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조현병’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거부감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또한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진 대형 국공립 시설은 진짜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하는 반면 도심에 있는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심각하지 않은 질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명씌우기는 정신질환자 가족들이 크게 우려하고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퇴원 후 환자 돌봄을 전담하는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 중 하나는 가족들이 이러한 오명씌우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일이다. 이러한 개입은 오명씌우기가 가족관계에 미치는 부담을 경감시키고, 궁극적으로 환자의 장기적 적응을 도와 재발 위험성을 낮추는데 효과적이다. 또한 정신질환자를 숨기고 싶은 마음에 모든 사회적 접촉과 지원을 회피하는 행동이 진정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정신질환이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질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수용되는 성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실상은 아직도 많은 가족들이 환자에 대해 숨기고 싶은 생각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