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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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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5 이슈리포트]육아 스트레스와 결혼만족도, 그리고 자기존중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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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예쁜데, 우리는 왜 서로 미워할까?

 

“그 누구도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샤워기 소리는 왜 이리 큰지, 뭉친 어깨가 더 움츠려 든다. 손에 잡히는 옷을 입고 손에 묻혀진 화장품을 바른다. 그래도 아기 옷은 일교차와 미세먼지, 그리고 어린이집 일정을 고려해 꺼내놓는다. 냉장고에 있던 떡을 한 볼 물고 출근한다. 아이 아침을 차려놓지 못했다. 15분만 더 일찍 일어날 걸. 15분만 덜 잘 걸.”

아이는 ‘축복’이다. 하지만 육아는 ‘일’이다. 그래서 부부는 힘들다. 그렇다고 아이를 원망할 수 없다. 누가 낳아달라고 했던가? 그저 배우자가 자꾸 얄미워질 뿐이다.

많은 심리학 연구 결과, 육아 스트레스는 부부간 결혼만족도를 감소시킨다. 아이가 어릴 때 더욱 그렇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면, 이런 연구 결과는 어떤가? 자녀가 있는 부부가 없는 부부보다 결혼만족도가 낮다. 자녀의 수가 많은 부부가 적은 부부보다 결혼만족도가 낮다. 물론 서양의 연구라 그럴 수 있다. 조금 더 전문가적으로 바라본다면, 결혼만족도는 무엇으로 평가했는가? 낮은 결혼만족도가 과연 온전히 육아 때문인가? 따지고 들 수 있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양육은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키우는 하나의 사명이기에, 부부는 각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을 투자한다. 그리고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살필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은 줄어든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아가는 너무 예쁜데, 남편이 미워 죽겠어요.”, 남편도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 “요즘 아내가 이상해요.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 나만 보면 잡아먹으려고 해요.”

‘체력이 성격이다’라는 말이 있다. 육아로 지쳤기에, 체력이 부족하기에, 배우자의 사소한 행동들이 더욱 마땅치 않은 것이다. 봐줄 수가 없는 것이다. 아이를 힘겹게 재우고도 남은 힘이 있다면야, 늦게 들어오는 배우자와 야식을 먹으며 영화도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눌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부들이 이런 육아 스트레스가 부부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저 요즘 따라 남편/아내가 밉고, 알수록 그/그녀는 이기적인 사람이고, 애초에 결혼을 잘 못한 것이고…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불안과 초조함이 배우자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로 잘못 해석 되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그리고 새로운 시나리오가 하나 추가된다. 가장 최근에 한국심리학회지에 실린 연구(원수경 등, 2016)에 따르면, 육아 스트레스를 높게 경험하는 사람이 배우자만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참으로 미워한다는 것이다. 만 4세 자녀를 둔 우리나라 부부 1658쌍의 자료를 분석 한 결과, 양육자의 육아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자기존중감이 낮아지고, 결국 결혼만족도가 저하되었다. 자기존중감은 스스로를 얼마나 가치롭게 여기는가를 일컫는다. 전반적인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평가의 정도이다. 즉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 때, 그러한 힘듬으로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에 비로소 결혼에 대한 만족도가 저하된다는 것이다. 아내도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육아 스트레스가 높다고 무조건 결혼만족도가 낮은 것이 아니었다. 육아 스트레스를 자신의 탓으로, 자신의 부족으로 인식할 때, 부부 간 사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배우자를 미워하게 된 것은 낯선 육아의 최종 결말에 불과하다. 그 사이, 나 자신을 미워하는 중간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도, 스스로에게 더 높은 기대를 지우고, 스스로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아이가 잠투정을 부릴 때면 잘 재우지 못하는 나를 탓했다. 잘 먹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요리를 못하는 나를 책망했다. 아이에게 더 좋은 집과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 내가 스스로 싫었다. 그리고 미웠다. 그렇다. 나에게 향하던 그 수많은 화살들이 버겁고 벅차 방향을 잃을 때쯤, 가장 가까이 있는 상대방에게 턱 하고 날아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배우자의 축 쳐진 어깨, 예민한 목소리, 경제적 부담을 염려하는 이야기마저, 나를 비난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너는 왜 아이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느냐’, ‘인터넷에 올라오는 슈퍼맘/대디처럼 육아도, 집안 일도, 바깥 일도 완벽하게 하지 못하느냐’ 마치 이렇게 나를 탓하는 것 같으니, 나도 상대방을 향해 칼을 더욱 높게 들었던 것이다. “다 이 놈의 잘못된 결혼 때문이다” 라고. 이러한 자책감은 남편보다 아내가 크다. 앞선 연구 결과, 아내는 남편이 느끼는 육아 스트레스에도 영향을 받아, 자기 자신을 더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도 내가 엄마인데, 내가 더 잘 해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은연 중에 계속 떠올리기 때문이다.

요즘 부모들은 슈퍼맘, 슈퍼대디를 꿈꾼다. 언제부터, 누구 때문인지는 따지고도 싶지만, 당장 달라질 것은 없다. 아무튼, 그저 ‘부모’라는 타이틀만 가진다고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죽하면 ‘육아전쟁’이라는 말을 쓰겠는가. 전쟁에서는 누군가를 탓할 여유 같은 건 없다. 그저 전우를 믿고, 서로 의지하며, 이해 안가고 엉망인 힘든 상황 하나하나를 해결해 가는 것이 전장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작은 스트레스든, 큰 스트레스든 모두 부부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 양육 스트레스를 오롯이 내 탓으로 돌리고, 나만 탓한다면, 결국 나는 누군가를 또 탓하게 될 것이다. 배우자든, 나의 부모든, 내가 속한 사회든.. 그러면서 나는 슬퍼지고, 현재 내가 속한 관계들을 미워하고 회의하게 된다.

육아 때문에 너무 힘들다면, 그래서 주변을 자꾸 원망하게 된다면, 나 스스로를 너무 홀대하는 것은 아닌지 우선 생각해봐야겠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 아니라, ‘나만 못나서’, ‘내가 더 알아보지 않아서’, ‘내가 더 헌신적이지 못해서’라는 자책부터 하는 건 아닌지 찬찬히 되짚어 봐야겠다. 그리고 나의 배우자에게 ‘일’을 하지 않는다고 툴툴거렸지만, 사실은 애쓰고 있는 ‘나’를 알아주지 않아 야속했던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주변에 육아 때문에 힘들어 하는 이가 있다면, 부부관계마저 흔들리는 이가 있다면, 아이의 성향이나 배우자의 됨됨이를 따져 묻고 그에 대한 어떤 해결책을 서둘러 제시하여 또 다른 부담을 안겨주지는 말아야겠다. 우선은, 그저 지금까지 아주 잘 해왔다고, 너는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렇게 여러 번 말 해주고 싶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의 아내에게. 그리고 나의 남편에게 먼저. 

“정말 수고했어. 애써줘서 고마워.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노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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