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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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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4 이슈리포트] 완벽주의의 빛과 그림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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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나, 잘하고 있는걸까?

 

순식간에 새순이 돋아 세상이 온통 초록으로 변하고 있다. 희망과 기대를 갖게 만드는 계절이다.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잘하고 있는지, 나는 잘 키우고 있는 건지 긴장감이 고조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부모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걱정하는 문제지만 정답은 찾아지지 않는다. 의욕만 앞서다가는 자칫 화를 부르기 쉬운 자녀교육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례 1. 아들에게 살해된 영수엄마의 비극

2011년 3월 충격적인 사건이 알려졌다. 전교 1,2등을 다투는 고3 모범생인 영수(가명)가 어머니를 살해한 후 8개월이나 방치하다가 발견된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에게 ‘전국 1등’, ‘서울대 법대진학’, ‘외교관’을 강요했다. 자녀의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을 굶기거나 잠을 재우지 않았고, 사건 전날에는 잠깐 졸았다는 이유로 9시간 동안 골프채로 폭력을 휘둘렀다. 학교에 찾아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아들의 뺨을 쉴 새 없이 때리기도 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영수는 급기야 어머니를 살해하는 끔직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사례 2. 밴쿠버의 영웅 김연아 엄마의 헌신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피겨퀸 김연아 엄마의 자녀교육은 ‘완벽함’ 그 자체다. 김연아가 피겨를 시작한 순간부터 10여 년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24시간 내조’를 했다. 훈련을 받는 동안 곁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며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관리했다. 엄마의 전공은 ‘연아 그 자체’였다. “모든 판단의 중심은 ‘연아’”라며 “아이를 위해서라면 때로는 냉정한 행동도 필요하다”고 말한다(조선일보 2008년 인터뷰). 김연아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비난받았을지도 모르는 극성엄마의 전형이라 할 수도 있다.

자녀교육을 떠올리면서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례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천국과 지옥이 따로 없다. 하지만 이 두 사례는 완벽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부모의 욕망, 완벽한 자녀교육이 가능하다는 부모의 믿음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영수엄마와 연아엄마 모두 가히 ‘완벽주의자’라 부를만하다.

 

완벽주의자란?

주위에서 이런 사람을 봤다면 완벽주의자에 틀림없다.

- 1등을 놓치고(한 번 2등 했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사람

- 미용실에서 오늘 한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며칠간 외출을 못하는 사람

완벽주의자는 무결점을 욕망한다. 조그만 잘못도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완벽하지 못할까봐 늘 두려워한다. 성공한 스포츠맨이나 뛰어난 과학자 중에 완벽주의자가 많다. 남다른 뛰어남을 추구하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지독한’ 사람들이다. 한편 먼지 한 톨 볼 수 없어 틈만 나면 쓸고닦고 조금이라도 흐트러져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결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그 상황을 피한다. 완벽하게 일처리를 못할까봐 질질끌다가 지각을 하거나 마감시간을 놓치기 일쑤다. 완벽주의 성향은 삶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한다.

 

완벽주의의 세 가지 유형

Hewitt & Flett(1991)에 따르면 완벽주의 성향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완벽을 욕망하는 나 (self-oriented perfectionism)

스스로에 대해 힘든 목표를 세우고 자신의 행동을 엄격하게 평가하는 성향을 말한다. 스스로 완벽해지고자 하는 사람이다. 대체로 사람들을 성공으로 이끄는 적응적 성향으로 심리적 문제를 겪지 않는 편이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유형의 완벽주의를 말한다. 성취를 통해 만족감을 얻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자신을 혹독하게 비판하지 않는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한다. 성취 기준이 자신 안에 있기 때문에 남들과의 경쟁에 집착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인간형에 가깝다. 그러나 계속해서 높은 기준을 달성하려고 하다가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지나치게 마른 몸매에 대한 집착은 섭식장애(eating disorder)의 위험성을 높이기도 한다. 이들은 일단 목표를 정하면 멈출 줄 모르는 폭주기관차와 같다.

2. 완벽을 연기하는 나 (socially prescribed perfectionism)

“다른 사람들은 나를 완벽하다고 생각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나를 완벽하다고 믿으니까 나는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완벽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해지라는 타인의 처방에 따라 완벽함을 이루려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려고 완벽함에 집착한다. 그리고 인정을 받지 못할까 늘 두려워한다. 대체로 복종적이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강한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을 비하(卑下)한다. 늘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다보니 자신의 정신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유형이다.

앞서 언급한 ‘영수’와 같이 극심한 학업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모범생들이 여기에 가깝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를 온갖 멋진 사진들로 장식해 ‘완벽한 나’를 연출하려는 요즘 젊은이들에게서도 이런 성향을 엿볼 수 있다.

3. 완벽을 강요하는 나 (other-oriented perfectionism)

자녀나 부하직원과 같이 가까운 사람에게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세워놓고 성취를 요구하는 성향을 말한다. 타인에게 완벽함을 강요하는 사람이다. 완벽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에 미치지 못하면 혹독하게 비판한다. 이들에게는 완벽주의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된다. 이들은 늘 자기중심적이고 우월감을 갖고 있다. 상대방을 조종하거나 이용하려 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어려움에 무관심하며, 약자에게 냉담한 편이다.

무조건 최고가 되라고 자녀를 압박하는 ‘타이거 맘’이 여기에 해당된다. 자녀의 사회정서적 발달에는 관심이 없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못살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정적 본인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완벽주의 성향의 세 가지 차원은 이론적으로는 구분되지만, 현실에서는 혼재해 나타난다. 예를 들면, 김연아 엄마,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 작년 개봉된 영화 <위플래쉬>의 플렛처 교수, 이들 모두 스스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동시에 자녀나 제자 역시 완벽주의자로 만들려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내가 정말 되고 싶은 ‘나’를 추구하는 건지, 누가 내게 심어준 내 모습을 쫓고 있는 건지, 때로는 구분이 어렵기도 하다.
 

완벽주의 부모를 부추기는 사회

우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부모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삶이 강퍅해질수록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유혹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고, 완벽한 자녀로 키우고 싶은 욕망과 불안은 커져만 간다.

- 넘쳐나는 자녀교육 정보

자녀교육 서적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인터넷만 들어가면 지식과 정보가 넘쳐난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정답이 있을 것만 같다. 나만 잘 모르지 있지, 다른 부모들은 모두 자녀교육을 꿰고 있을 것만 같다. 불안하다.

- 너도 나도 자녀교육 전문가

과거 부모들은 전문가의 자녀양육법을 따라하다가 힘에 부치면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며 느슨해져도 죄책감이 덜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웃집 엄마도 자녀양육서를 책으로 내는 세상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엄마는 셀 수 없이 많다. 다들 완벽하게 하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이제는 쉽게 포기가 안된다.

- 학원가 상술의 치명적인 유혹

“늦어도 3살부터는 영어유치원에서 ‘파닉스(phoenics, 영어발음법)’로 시작해 중학교 때 마무리하고, 수학은 6학년 들어가기 전에 중학교 과정을 마스터해야하고,..” ‘완벽한’ 학원시스템을 ‘잘’ 따라가기만 하면 당신 아이도 완벽해질 수 있다고 유혹한다. 학원숙제가 힘에 부치면 ‘새끼과외(학원)’를 붙이면 된다고도 알려준다. 학원 상술의 진화는 끝을 모른다.

- 부모도 완벽해야 한다는 코칭 열풍

학원이 아무리 완벽해도 집에서 부모가 잘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협박한다. 학원스케줄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옆에서 관리하는 요령을 알려주는 부모코칭도 성행이다. 이 대열에서 나만 뒤쳐질까 불안은 증폭된다.
 

완벽한 자만이 살아남는 각자도생의 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완벽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정글과 같은 사회, 완벽한 사람만이 살아남는, 완벽하지 못한 사람은 가혹하게 처벌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회”라고 부모들을 협박한다. 반드시 일류대를 가야하고 온갖 스펙을 쌓아야한다고 부추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완벽한 자녀로 키우는 완벽한 부모가 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아닌걸 알지만 결국 이 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자녀교육 방법은 없다. 완벽을 강요하는 부모는 결국 완벽함을 연기(演技)하는 자녀를 만들 뿐이다. 부모가 세워놓은 불가능한 목표를 쫓아가느라 하루하루 지쳐가는 아이는 매우 위험하다. 강요된 완벽주의는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따라하다가 잘못하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영수’와 같은 수많은 아이들이 언제, 어떤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

“나는 완벽한데, 너는 왜?”

“나는 죽어라고 뒷바라지 하고 있는데, 너는 왜 안하는데?”

무척 위험한 생각이다.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이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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