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6-1 이슈리포트] 알파고와 인공지능, 그리고 인간의 미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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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6-03-14 |
내용
바둑의 시작
바둑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동양적인 정서를 가진 게임 중 하나이다.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은 대국자가 흑•백의 바둑돌을 19개의 가로줄과 세로줄로 만들어진 바둑판 위의 점에 놓아서 “집”을 많이 차지한 사람이 이기게 된다. 맹자(BC 372~289)는 나라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바둑 때문에 부모 봉양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언급할 정도였으니 당시 바둑이 폭넓게 보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2500년 이상 전부터 바둑을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인기를 끈 “미생”이나 “응답하라 1988” 드라마의 주인공이 바둑기사인 점을 볼때도 바둑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처럼 바둑은 단순한 게임을 넘어서 오랜 수련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게 되고, 이는 우리가 인생에 경험하는 다양한 성찰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알파고와 인공지능
바둑수련생과는 달리 알파고 (AlphaGo)는 컴퓨터 사이언스를 바탕으로 개발되었다. 알파고가 바둑돌을 놓을 위치를 정하는 알고리즘은 ‘정책망(policy network)’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신경망과 ‘가치망(value network)’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신경망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책망은 다음에 돌을 어디에 둘지 선택하는 알고리즘이고, 가치망은 승자를 예측하는 역할을 한다. 알파고는 무수한 학습과 반복 대결, 자기 훈련을 통해서 정책망을 정교하게 발달시키게 된다. 알파고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한 추론을 이용하여 엄청난 학습능력은 축적하게 된다. 수퍼컴퓨터 '왓슨'은 이미 세계 최고의 암센터로 꼽히는 MD앤더슨이나 메모리얼 슬론케터링에서 전문의와 함께 암•백혈병 환자를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의료진이 담당 환자에 대한 임상 정보를 입력하면 왓슨은 방대한 의료 서적과 환자 기록에 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가장 확률 높은 병명과 성공 가능성이 큰 치료법 등을 제공한다. 또한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운전자 없이 자율주행하는 차량은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서는 최근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시스템을 연방법 체제에서 ‘운전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인공지능과 인간 두뇌의 유사점과 다른 점
인간 두뇌의 기억과 학습은 인공지능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인간의 두뇌는 단순한 지식이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 경험에 따라서 기억의 강도와 학습의 정도에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애인이 “우리 만난지 1주년에 여행을 가자”고 하면 그 말과 상황이 자주 떠오르며 유쾌한 감정이 유발되지만, 오래된 동호회 모임에서 “1년뒤에 다시 모입시다”라는 말을 들으면 메모만 해놓고 기억에는 남지 않는 것과 같다. 인간의 두뇌는 가장 안쪽에 변연계(limbic system)라는 감정의 중추를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다양한 기억은 변연계의 필터를 통하여 강화되거나 소실되면서 대뇌에 저장되게 되고 그 사람의 인격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사별한 아이는 청년기에 이성을 사귀면서 상대가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 만남을 지속하면서 상대가 안심을 시켜줘도 집착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인간은 이전에 학습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경험과 감정의 변주에 의해서 인간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할 수 있다. 그에 반하여 알파고는 방대한 데이터를 근거로 무한 반복의 학습을 통한 자기 강화를 이루어 내지만 아직 감정을 가지거나 느낄 수는 없다. 또한 바둑에서 얻어진 방대한 데이터와 학습을 바둑과는 전혀 다른 영역에 적용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아이디어를 내기는 힘들다.
알파고에서 보는 인간의 미래
알파고 등 인공지능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인공지능이 수능시험을 본다면 전국 1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5개의 문항에서 답을 찾는 것은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대국을 할 때 생각해야 되는 경우의 수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면 단연 1등을 할 것이다. 2011년에는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Watson)'이 미국 인기 퀴즈 프로그램 역대 우승자에게 승리한 적이 있다. 많은 지식을 외워서 이를 적용해 답을 제시하는 형태의 직업은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현재 인기가 많은 전문직인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도 이러한 도전에 큰 위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최종적인 책임은 이들 전문직이 져야 하겠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할 경우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이 적은 인력으로 많은 업무 처리가 가능해진다.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
터미네이터 같은 미래 공상영화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은 흥미롭지만 매우 공포스런 주제이다. 다양한 학습이 이뤄진 미래의 수퍼 인공지능이 개발된 후 이들이 인간의 편이 아니라 인간을 공격을 할 때 이를 통제할 수 있는가 또한 인공지능이 인간이 가치를 두는 일에만 능력을 발휘하도록 제한할 수 있는가는 인공 지능과 관련된 불편한 미래상이다.
알파고 때문에 인공지능이 큰 관심을 일으키고 있으나 인공지능은 아직 초보 단계이다. 뇌를 본 따서 만든 컴퓨터 기반 신경망이 개발되고 있지만 인간에 비하여 수백배 축소된 모형이다. 인공지능은 독립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질문을 갖지 못하고, 왜 하는지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인공지능은 현재 의학에서 주로 실용화되고 있지만 수십년후 많은 발전이 있게 되면 원자력 기술이 값싼 전기와 질병 치료에 사용될 뿐 아니라 핵폭탄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인류에게 딜레마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의 약점
지금까지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인공지능은 학습과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에 비해서 매우 개발이 어렵다. 인간의 감정을 평가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표정을 분석하고 대화의 속도, 높낮이, 혈중 코티졸 농도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를 할 수는 있지만 희로애락, 이중감정, 변덕스럼, 의심 등의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황에 적절하게 판단하고 대응하는 능력은 인간의 가장 고등기능에 해당할 것이다. 예를 들어, 부인이 왜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지를 인공지능에게 판단하라고 하면, 인공지능은 부인이 화가 난 상태인지 평가를 하고 나서, 지금까지 부인이 화가 난 적이 있는 모든 경우의 수의 데이터를 모아 대규모의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할 것이다. 화가 나게 된 현재의 상황에 대한 데이터를 모두 분석할 것이고, 어떤 부분이 화가 나게 만들었는지 연관성을 탐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대응을 한다면 부인이 화가 더 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실시간으로 변하며, 말과 표정, 행동을 통한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론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진다면 컴퓨터 공학자들은 진 이유를 분석하고 이를 무한대의 학습과 대결을 통해 강화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대국을 승리로 이끌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이 수를 잘못 두었을 때의 미묘한 표정의 변화와 승리에 다가갈 때 미소의 의미를 알파고는 알 수 없다. 알파고는 그 시간에도 이세돌 9단이 둔 수를 무한 반복해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진다고 해도 우리는 바둑과 인간의 미래를 암울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세돌 9단이 평생에 걸친 바둑 수련을 통해 얻어진 지혜와 앞으로 바둑을 둘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이치와 희노애락을 알파고가 깨닫기에는 아직 먼 미래가 남았기 때문이다.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